[DEEP BYTE] 공급망 리스크 완전 해부(1): 반도체와 물류

[DEEP BYTE] 공급망 리스크 완전 해부(1): 반도체와 물류

세계 경제에 위협이 되고 있는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반도체와 물류를 중심으로 총정리해볼까요?

🐶  J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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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급망 리스크가 세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부품부터 원자재, 에너지, 그리고 노동력까지 모든 생산 요소가 부족해지면서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하고, 여러 나라의 경제 성장률도 위축됐는데요. 얼마 전 이코노미스트 지는 이렇게 생산 요소가 광범위하게 부족해진 현상을 일컬어 '부족 경제(shortage economy)'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급망 리스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병목(bottleneck)'이라는 개념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는데요. 오늘 DEEP BYTE에서는 생산-운영관리(operation management)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병목현상'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의 원인과 실태를 분석해보려 합니다.

공급망 리스크 = 병목현상?

최근의 공급망 문제를 두고 부품 공급에 '병목현상'이 발생했다고 이야기하는데요. '병목현상'은 하나의 문제가 전체 생산 프로세스를 제약하는 현상을 이르는 말로, 생산관리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병목현상의 예시를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4차선 도로가 갑자기 2차선 도로로 바뀔 때 교통체증이 발생하는 것이 대표적인 병목현상인데요. 가려는 차는 많은데 도로가 줄어들면 교통 흐름이 전반적으로 나빠지게 되는데, 이때 '줄어든 차선'이 '병목'이 되는 셈이죠. 최근의 공급망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품에 대한 수요도 많고 생산역량도 충분한데, 핵심 부품 몇 개가 부족해지면서 전체 생산이 타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병목이 중요한 이유는 병목이 전체 생산량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위의 그림에서 보듯 아무리 원자재가 많고 생산능력이 높아도 병목현상이 생기면 전체 생산량은 줄어들게 됩니다. 최근 반도체 부족으로 큰 타격을 입은 자동차 생산이 이런 병목현상을 잘 보여주는데요. 현재 자동차 업계의 노동력, 생산설비, 그리고 원자재 모두 차량 100대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상태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게다가 수요도 100대 이상이어서 만들기만 하면 모두 팔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보죠. 이런 상황에서 차량 생산에 꼭 필요한 반도체가 60개밖에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차를 더 만들고 싶어도 60대까지밖에 못 만들겠죠. 실제로 이것이 바로 포드(Ford)의 현재 상황인데요. 포드는 반도체 부족으로 9~10월 차량 생산량이 40% 가까이 줄었습니다.

세계 공급망의 병목은 어디였을까?

이번 공급망 리스크에서 핵심 병목은 반도체와 물류, 에너지와 노동력이었습니다. 반도체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차량과 전자기기 생산이 타격을 입었고, 컨테이너선과 화물차가 부족해지면서 제품 수출입이 어려워졌죠. 게다가 원유 가격 급등과 중국의 전력난이 겹치면서 생산비용이 증가하고 공장이 조업을 중단하는 사태도 발생했습니다. 오늘은 특히 반도체와 물류에서 어떤 병목현상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반도체

반도체는 최근 정말 핫한 키워드였습니다. 반도체 부족이 기업의 생산량과 실적의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인데요. 애플은 시스템 반도체 부족으로 제품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서 3분기 실적이 시장의 기대에도 못 미치게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반도체 문제로 아이폰13의 생산량을 천만대 가까이 줄일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기도 했죠. 스마트폰과 랩탑 등에 들어가는 고성능 반도체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자동차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반도체의 부족도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3분기 GM의 판매량은 44%, 폭스바겐의 판매량은 30% 가까이 줄었죠. GM은 3분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40% 감소했고, 포드는 심지어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반도체 부족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먼저 스마트폰 등 고성능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족은 파운드리 생산 능력의 한계 때문입니다. 인공지능 기술 구현을 위한 반도체 수요가 늘고, 코로나19로 언택트 수요가 커지면서 고성능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는데요. 하지만 5~7나노급 고성능 반도체를 위탁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 기업은 전 세계에 TSMC와 삼성전자 두 곳밖에 없기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TSMC와 삼성전자 급의 반도체 생산시설을 갖추기 위해선 수십조원의 돈과 오랜 노하우가 필요하기에 다른 기업들이 시장에 쉽게 진출하기도 쉽지 않죠.

특히 문제가 심각한 것은 자동차, 냉장고, TV 등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성능의 반도체입니다. 이런 제품들에는 5~7나노로 설계되는 AP칩(스마트폰의 CPU역할을 하는 반도체)과 달리 28~40나노 정도로 설계된 중간 성능 반도체만 들어가도 충분한데요. 하지만 나노 기술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파운드리 기업들은 이런 중간 성능 반도체를 생산하는 설비에 투자를 늘리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중간성능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었고,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광범위한 반도체 부족사태가 발생한 것이죠.

특히 최근 빨라지는 전기차 전환도 중간성능 반도체 수요를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전기차에는 일반 내연기관차의 2배에 달하는 반도체가 들어가기 때문인데요. 이런 가운데 반도체 생산 기업이 몰려있는 대만에서 올해 기록적인 가뭄이 발생하고,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업체인 인피니언의 생산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 여러 악재들이 겹치면서 차량용 반도체 부족사태는 더 심해졌습니다. 완성차 업체들의 판단 미스도 한몫했는데요. 코로나19 초기 판매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한 차량 업체들은 완성차 재고를 줄여나가는 데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외로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고 차량 수요가 급증하면서 재고가 부족해졌고, 생산을 급히 늘리려다 보니 반도체 수요도 급증할 수밖에 없었죠.


2.물류

제조 기업에 타격을 입힌 것은 반도체만이 아니었습니다. 꽉 막힌 물류도 수출입 기업들의 애를 태웠는데요. 세계적으로 컨테이너선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미국에선 항만에서 물류 적체 현상이 일어나면서 배가 컨테이너를 내리는 데만 열흘 넘는 시간이 걸린다고 하죠. 게다가 기껏 컨테이너를 하역하더라도 실어나를 화물차가 부족해 유통 기업들의 재고가 동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연말에 블랙프라이데이와 성탄절 등 굵직한 대목이 몰려있는데 물류대란으로 대규모 할인 행사도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죠. 그렇다면 이런 물류대란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먼저 컨테이너선 부족의 원인으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의 해운업계의 전반적인 침체가 꼽히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가 급격하게 침체되고 소비가 줄어들면서 해운업계도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요. 실적이 좋지 않다 보니 선박 발주를 줄이고, 선박을 보수적으로 운용해왔습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직후에는 물동량이 더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예상과 달리 가구와 PC 등 언택트 수요가 급증하면서 물동량이 크게 늘었고, 컨테이너선이 부족한 상황에서 해운요금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요금만 오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배가 부족해 물건을 수출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죠. 이에 더해 물건을 싣는 컨테이너까지 부족해지면서 물류난을 심화시켰습니다.

어찌어찌 물건을 배에 실어 보내도 물건을 배에서 내리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데요. 미국의 대표적인 항구인 로스앤젤레스(LA)항과 롱비치(LB)항 인근에는 무려 157척에 달하는 화물선이 입항을 기다리며 떠 있다고 하죠. 항구에 도착한 컨테이너를 항구에 내리는 데만 11일 가까이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항구에 컨테이너를 내려도 문제입니다. 무려 20만대에 달하는 컨테이너가 항구에 쌓여있기 때문인데요. 올해 초 미국에서 코로나19 확산속도가 빨라지면서 항만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감염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한 주 만에 700명 가까운 확진자가 나오면서 항만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죠. 바이든 대통령이 항만을 24시간 가동하라고 명령했지만, 물류적체는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닌데요. 컨테이너를 인도받아도 이를 물류기지로 옮겨줄 화물차 운전기사가 부족합니다. 미국의 트럭 운전사 부족 문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심각한 수준이었는데요. 대부분의 기사들이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인 데다, 젊은 세대들은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취업을 꺼린다고 하죠.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 확산으로 온라인 배송이 급격하게 늘고, 기업들은 미국 최대의 대목인 블랙프라이데이를 대비하기 위해 재고확보에 나서면서 트럭 운전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것입니다. 코스트코는 운전사를 구하지 못해 휴지와 생수 재고가 동나기도 했죠.

사실 이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닌데요. 영국에서도 트럭 운전사가 부족해 주유소에 기름이 동나는 사태가 발생했었죠.  트럭 운전사들은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는데, 브렉시트(Brexit)로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서 이들이 모두 비자를 새로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코로나19와 지정학적 문제들이 함께 얽히면서 공급망 리스크가 심화했고, 각국의 경제성장률이 기대에 못 미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은 반도체와 물류를 중심으로 공급망 리스크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다음 DEEP BYTE에서는 또다른 핵심 병목인 에너지와 노동력 부족 사태에 대해 알아보고, 공급망 리스크를 잘 이겨낸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효율적인 공급망 관리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