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BYTE] 미국의 조금 늦은 "출구전략"

[DEEP BYTE] 미국의 조금 늦은 "출구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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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롬 파월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 의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준금리를 조금 더 빨리 올리는 것이 나았을 것 같다"라며 본인의 판단 미스를 인정했습니다. 경제의 연착륙이 쉽지는 않겠지만,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죠. 이렇듯 위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한 나라의 통화정책을 정상화하는 '출구전략'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요.

2008금융위기 이후 한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던 '출구전략'은 코로나19가 끝나가는 지금 다시 한번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출구전략이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행했던 경제 정책을 중단하는 것을 뜻하는데요. 제롬 파월 의장은 성공적인 출구 전략과 경제 연착륙의 기회가 있다며 일부 낙관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미 늦었다'는 지적도 많이 나옵니다. 오늘 <DEEP BYTE>에서는 출구전략이란 무엇인지, 또, 미국의 출구전략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자세히 다뤄봤습니다.


지금 미국 경제는 어떤 상황일까?

미국의 출구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지금 미국의 경제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인 인플레이션(물가)과 실업률(고용)을 중심으로 한 번 살펴볼까요?

아직 심각한 인플레이션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매우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얼마 전 미국의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공개됐는데, 전년 동기 대비 8.3%의 상승률을 기록했습니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었던 8.5%보다는 낮아진 수치이지만, 시장의 예측치였던 8.1%는 넘어선 수치였죠. 이에 대해선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둔화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여전히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수준이라는 해석 역시 가능합니다.

경기 부양책으로 늘어난 수요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다양한데요. 크게 보자면 경기 부양책으로 증대된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발하면서 세계 각국이 시중에 돈을 푸는 경기 부양책에 나섰습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춰 대출의 문턱을 낮춰줬고, 국채나 부실채권들을 직접 매입하면서 시중금리를 낮춰 기업들의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해줬습니다. 또, 미국 정부는 국민 개개인에게 수천달러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생계를 지원했죠. 대규모 경기 부양책이 시행되면서 주식과 부동산 등 주요 자산의 가격이 크게 올랐습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났고, 전자제품부터 자동차, 가구 등 다양한 제품에 대한 소비가 급증했습니다.

코로나19와 전쟁으로 제한된 공급

수요는 늘었지만, 정작 코로나19의 여파로 공급은 제한됐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각종 원자재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는데요. 구리 같은 금속 원자재를 생산하는 광산은 아예 문을 닫았고, 전자제품을 조립하는 공장이 폐쇄되거나 작업이 지연되기 시작했죠. 게다가 코로나19 이후 전자제품의 수요가 폭증하고, 정부가 경기 부양책의 일환으로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적극 지원하면서, 이들 산업에서 쓰이는 실리콘, 리튬, 구리, 알루미늄 등 특정 원자재의 부족 현상이 급격하게 심화됐습니다.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석유 생산량을 의도적으로 억제했죠. 코로나19 이전 2%대에도 못 미치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단숨에 7%대까지 뛰어올랐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 공급망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고, 전 세계적으로 물가상승률을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고, 국제유가를 비롯해 천연가스, 석탄 등 각종 에너지원의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또, 밀과 옥수수 등 다양한 곡물 원자재의 주요 생산국이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이 막히면서 연쇄적인 식량난이 발생했는데요. 최근에는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까지 밀 수출을 금지하고, 기름야자의 최대 생산국인 인도네시아가 팜유 수출을 금지하는 등 식량 안보를 위해 수출을 제한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식량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가 따라 오르는 '애그플레이션'을 유발했죠.

K-인플레이션의 현황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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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열되는 노동시장

결국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풀었던 돈으로 인해 수요는 커졌지만, 코로나19와 전쟁의 영향으로 공급이 제한되면서 물가가 계속 올랐던 것인데요. 이렇게 인플레이션은 점점 심해지고 있지만, 미국 내 고용 상황은 매우 양호한 상태입니다. 보통 물가와 실업률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약 3.6%로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에 가깝습니다. 누구나 일할 의지만 있다면 일할 수 있는 상황으로, 오히려 요새는 노동자가 부족해서 난리라고 하죠.

지난 2년간 사회 전반의 수요가 빠르게 확대되면서 미국의 고용 시장도 매우 빨리 회복했는데요. 동시에 구인난도 매우 심해졌습니다. 경기 부양책으로 각종 자산 가격이 오르며 고령 노동자들이 조기에 은퇴를 해버렸고, 코로나19로 교육 기관들이 문을 닫으면서 육아에 대한 부담을 느낀 여성 노동자들이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노동자 우위의 고용시장이 조성되면서 임금 인상 압박도 커지고 있는데요. 일부 경제학자들은 지금의 노동 시장이 경기 부양책으로 인해 '과열'된 상태이며, 이를 방치할 경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임금 인상 흐름이 시작되면 결국 제품 가격이 임금 인상분이 반영되고, 물가가 오르기 때문이죠. 또, 임금은 한번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 성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임금 인상으로 물가가 올라버리면 그땐 손 쓰기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인플레이션실업률(노동시장)을 중심으로 미국 경제를 살펴봤는데요. 정리하자면, 현재 미국은 물가 상승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지만, 고용은 매우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유명한 격언이 하나 떠오르는데요. 바로 "물가와 실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없다(필립스 곡선)"는 것입니다. 고용은 사실상 경기와 같다고 봐도 되니, 실업을 경기로 바꿔보면 "물가와 경기라는 두 마리 토끼는 한 번에 잡을 수 없다"가 되죠. 이 말은 곧 한 쪽을 살리기 위해선 다른 한쪽을 희생해야 한다는 뜻인데요. 지금은 물가를 희생해 고용(경기)을 잡은 상황인데, 앞으로 물가를 잡으려면 필연적으로 고용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쪽에서는 고용을 크게 희생하지 않고 물가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흔히 말하는 경제의 연착륙이 바로 이런 의미이죠. 반대로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경제학자들은 고용 희생 없이 물가를 잡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 입장입니다. 연준이 작년 인플레이션을 잡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긴축을 미뤄 물가가 크게 오르고 고용시장이 과열됐다는 것이죠.


돌아보니 조금 늦은 출구 전략

출구전략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인플레이션과 실업을 먼저 본 것은 결국 출구전략이 물가와 고용 간의 밸런스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코로나19 이후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막대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했다고 이야기했는데요. 위기 때야 워낙 돈이 돌지 않아 아무리 많은 돈을 풀어도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지만,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시중에 풀린 돈이 물가를 빠르게 밀어 올리게 됩니다. 시중에 돈이 많이 돌면 당연히 고용도 좋아지지만, 동시에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서 물가가 오르죠. 그래서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세에 들어설 기미가 보이면 중앙은행은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정상화해야 합니다. 긴축정책 같은 통화정책이 실제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선 몇 달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작업은 아닌데요. 안정적인 출구전략을 위해선 앞으로 경기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고, 그에 맞게 기준금리와 자산규모를 조절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위기 당시에는 워낙 불확실성이 커 예측의 정확도가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작년처럼 코로나19가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듯하다가, 변이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섣불리 금리를 올리기 어렵겠죠. 그래서 실제로 작년 연방준비제도는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어느 정도 용인하면서 고용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죠. 많은 분들이 작년 파월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실 텐데요. 작년 파월 의장은 고용 지표의 회복을 물가보다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물가와 고용의 적절한 밸런스를 찾는 것은 곧 긴축에 들어갈 타이밍을 잘 잡는 것과 같습니다. 위기가 발생한 후 고용이 충분히 회복되기 전에, 물가에 대한 걱정으로 섣불리 긴축에 나선다면 회복되던 경제가 다시 급격히 침체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고용이 회복된 후에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지속한다면 물가가 급등해 경기가 둔화될 수 있죠. 하지만 이 타이밍을 잘 잡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에클스의 실수'와 '그린스펀의 함정'이 이를 잘 보여주는데요. 에클스와 그린스펀 모두 과거 미국 연준 의장이었습니다. 에클스는 대공황 시기 섣불리 금리를 올렸다가 경기를 급격히 침체시켰고, 그린스펀은 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지속하다가 2008 금융위기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죠.

그렇다면 이미 출구전략이 어느 정도 진전되고 있는 지금, 연준의 대응을 돌아본다면 어떨까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 있지만, 연준의 출구전략은 약간 늦은 것처럼 보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여러 불확실성을 감안하더라도, 수많은 경제학자들과 월가 관계자들이 인플레이션의 위협을 경고해왔던 점을 고려한다면 파월 의장 역시 '판단 미스'의 책임에서 자유롭긴 어려울 것 같은데요. 특히 작년 하반기 물가가 5%, 6%를 넘어서는 와중에도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평가하며 "연준을 믿어달라"고 호소한 것은 뼈아픈 실수로 남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파월 의장은 얼마 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기준금리를 좀 더 빨리 올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실수를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죠.

인플레이션의 심각성을 깨달은 연준은 최근 강력한 긴축 정책에 나서고 있는데요. 지난 5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0.5%P 인상한 데 이어, 올해 두세 차례 더 0.5%P 수준의 금리 인상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당장 6월부터는 보유 자산의 규모를 줄이는 양적 긴축에도 나서죠. FOMC 결과 발표 당일 파월 의장은 0.75%P 수준의 금리 인상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지만, 이후 연준 인사들을 중심으로 0.75%P 수준의 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올해 말 미국의 금리가 3.00~3.25% 수준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죠.

당초 연준이 목표로 삼던 물가상승률은 평균 2%였는데요. '판단 미스'로 조금 늦게 긴축에 들어간 연준이 물가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선 금리를 더 올리는 방법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4~5%대까지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는 가운데, 고금리가 현실화할 경우 경기 둔화는 피할 수 없겠죠. 결국 고용을 어느 정도 희생하고 물가를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데요. 과연 실제 경기가 침체되는 것이 눈에 보인다면 연준이 계속 금리를 올릴 수 있겠냐는 의문도 나옵니다. 또, 애초에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인 공급망 문제의 해결 없이 금리만 올린다고 물가가 잡히겠냐는 지적도 나오죠.

어찌 됐든 연준은 다가오는 FOMC에선 계속 0.5%P 이상의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경우 주식이나 가상자산,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도 전반적으로 내릴 수밖에 없겠죠. 이미 강력한 긴축 기조로 주식시장과 가상자산 시장은 빠르게 수축하고 있는데요. 특히 가상자산 시장에선 테라-루나 쇼크까지 겹치면서 분위기가 얼어붙고 있습니다. 다가올 긴축의 시대, 과연 연준은 '판단 미스'를 뒤로 하고 물가와 고용을 동시에 잡는 경제 연착륙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어느 정도의 희생을 감수하고 물가를 잡기 위한 강력한 긴축 정책을 밀어붙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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