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 지수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9.1% 급등했습니다. 1년 만에 물가가 거의 10% 가까이 오른 셈인데요. 물가상승률이 전문가들의 예상치까지 넘어섰던 이유는 바로 "에너지" 가격이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기 때문인데요. 미국 내 에너지 가격은 전년 대비 무려 40% 넘게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물가를 잡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중동 산유국들에 증산을 요구했고, 대내적으로는 미국 에너지 기업들의 증산을 압박하고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고 있죠. 하지만 이런 조치들 모두 충분치 않았습니다. 중동 산유국들과 미국 에너지 기업들은 증산 여력이 한계에 다다랐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고,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석유 증산'을 얻어내기 위해 중동 순방길에 올랐는데요. 특히 '카슈끄지 암살사건'으로 사이가 틀어졌던 사우디아라비아에 방문해 암살의 배후로 알려진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까지 만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만남 후 "증산에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얼마 안 돼 사우디 외무장관이 "원유증산 관련 논의가 없었다"며 선을 그었는데요. 가뜩이나 지지율이 추락하고 있던 바이든 대통령은 중동 순방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DEEP BYTE>는 미국과 중동, 특히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얽힌 문제들을 짚어보고, 바이든 대통령이 봉착한 딜레마를 다뤄보려 합니다.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란은 매우 복잡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와 이란은 중동의 2대 산유국으로, 과거 모두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요. 하지만 지금 이란은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사우디는 미국과 다소 애매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란혁명, 어긋남의 시작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각각 시아파와 수니파를 대표하는 중동의 맹주로, 현재 매우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있습니다. 하지만 옛날부터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닌데요. 과거 양국은 미국의 우방국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란혁명을 시작으로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됩니다.

  • 1979년 이란혁명 전까지만 해도 이란과 사우디는 미국의 우방국이었습니다. 양국은 모두 엄청난 석유 생산량을 자랑하는 산유국으로 값싼 석유를 미국에 공급하고, 미국의 지원으로 지역의 맹주로 자리매김했죠. 당시 이란은 시아파, 사우디는 수니파로 종파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 하지만 양국 관계는 이란혁명을 계기로 급격하게 냉각됩니다. 이란은 친서방 독재 정권인 팔레비 왕조가 통치하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팔레비 왕조가 급격한 탈종교화를 추진하고, 빈부격차와 경기침체까지 심해지면서 결국 대규모 민중봉기(=이란혁명)가 발생합니다.
  • 이때 세속 왕정이 무너지고,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를 위시한 이슬람 공화정이 들어서죠. 친미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후 종파적 색채가 강해진 이란과 사우디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이후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과 이라크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이란과 사우디-미국의 관계는 크게 악화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