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아날로그 켄트 전 부대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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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아날로그 켄트 전 부대표를 만나다

반도체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전 세계가 반도체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중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반도체 시장, 특히 흔치 않은 팹리스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관악아날로그는 지난 3 7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팹리스 스타트업입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정보공학부의 김수환 교수가 대표를 맡고 있는데요. 지금은 서울대학교의 산학협력을 대표하는 스타트업 중 하나가 됐습니다.

켄트 전 부대표를 서울대학교 연구공원에 위치한 관악아날로그 본사에서 만났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의 한국 지사장 출신인 켄트 전(Kent Chon) 부대표는 현재 관악아날로그의 부대표이자 최고 비즈니스 책임자(CBO)를 맡고 있습니다. 

📀 팹리스: 팹리스(Fabless) Fabrication+less의 합성어로, 반도체 설계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를 뜻합니다. 

🍊 Orange: 관악아날로그는 아날로그 전력 반도체 SoC 설계 기업입니다. 언뜻 듣기엔 생소한데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켄트 전 부대표: , 소리, 온도 등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전부 아날로그 신호예요. 하지만 이 신호를 그대로 디지털 반도체 내부에 넣으면 연산이 되지 않아요.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칩 내부에 넣어야지 연산이 가능하죠. 아날로그 반도체는 아날로그 신호를 0 1의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역할을 합니다. '아날로그'라는 이름이 구식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반대예요. 혁신적인 기술이 나올수록 아날로그 반도체를 응용할 수 있는 부분은 무궁무진해요. 자율주행차를 생각해 보세요. 카메라로 보이는 외부의 정보를 비롯해 차량 내외부의 온도, 타이어 기압 등 다양한 아날로그 신호를 받아들여 디지털로 전환하는 센서가 많기 때문에 아날로그 반도체가 많이 필요하죠.

관악아날로그는 단순히 아날로그 반도체가 아닌 SoC 반도체를 만들어요아날로그 반도체와 전력반도체,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의 3가지 기능을 한 칩에 통합한 건데요. 3가지 기능을 통합해 생산 비용이 줄어들고, 관리가 쉬워져요. 크기 또한 작아지니 다양한 곳에 응용할 수 있죠. 예전의 노트북은 지금보다 들어가는 반도체가 많아 두껍고 무거웠죠하지만 SoC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가 여러 기능을 하나의 반도체로 묶으니 반도체가 점차 소형화됐고, 반도체를 활용한 노트북도 더 작고 가볍게 만들 수 있게 됐어요.

🔎 읽으면서 궁금했던 반도체 용어가 있다면?

📀 SoC 반도체: System on Chip의 약어로, 기존 여러 반도체가 했던 기능을 하나로 묶은 반도체를 뜻합니다. 하나의 반도체에 모든 것을 넣는 만큼 고도의 설계와 제조 기술이 집약된 반도체입니다.

📀 마이크로컨트롤유닛(MCU)집적회로 안에 프로세서와 메모리, 입출력 장치를 내장해 하나의 컴퓨터처럼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초소형 반도체입니다.

🍊 Orange: 산업용과 차량용 반도체를 주로 개발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 켄트 전 부대표: SoC 반도체를 설계할 때는 시장을 정해두고 설계합니다. 저희는 일반 소비자를 위한 반도체보단 기업을 위한 산업용 반도체를 생산해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같은 반도체는 일반 소비자를 위한 반도체예요. 스마트폰에 하나씩 들어가니 단가가 낮더라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죠. 하지만 계약을 따내지 못하면 막대한 손실을 떠안을 수 있어요. 또, 스마트폰 출시 주기에 맞춰 새로운 반도체를 개발해야 하는데, 예산이 한정된 스타트업에선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저희는 B2B(기업간거래)를 중심으로 산업용,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해서 납품해요.

산업용 반도체 시장과 차량용 반도체 시장 모두 일반 소비자를 위한 시장보다 더 오랜 기간 같은 반도체를 사용해요. 그 대신 더 복잡한 기능이 들어가고, 오래 쓸 수 있는 신뢰성 있는 반도체가 필요하죠. 한번 반도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생산 설비가 단종될 때까지 바꾸지 못합니다많은 반도체 기업이 일반 소비자를 위한 시장보다 부담이 훨씬 덜한 두 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납품 규모는 작아도, 위험성이 덜하고 단가가 높기 때문이죠. 저희는 두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반도체 전시회에 참가한 관악아날로그 © 관악아날로그 

🍊 Orange: 제품을 먼저 개발하고 회사를 찾나요, 아니면 회사의 요청을 받고 제품을 개발하나요?

🎙️ 켄트 전 부대표: 저희는 제품을 만들고 회사를 찾으면 큰일 납니다. 하나의 제품을 만드는 데 10억에서 20억 원이 들어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만들었는데, 정작 기업이 필요 없다고 하면 난처해지죠. SoC는 맞춤형 반도체에 가까워요. 고객사는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반도체를 주문해 사용하는데요. 설계하기 전 제품을 필요로 하는 업체를 찾아 계약을 하고, 납품을 보장받아야 해요. 그래서 SoC 반도체를 활용한 기업이 잘 되면 좋지만, 안 되면 기업에 부담이 큽니다.

 

🍊 Orange: 관악아날로그는 최근 70억 원의 시리즈A 투자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투자유치에 성공하셨나요?

🎙️ 켄트 전 부대표: 관악아날로그가 만든 제품은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고 저희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방향도 달랐죠. 처음부터 국내 대기업 대신 해외 시장과 수출을 겨냥한 제품을 만들었어요. 분야도 달랐어요. 일 년마다 새롭게 개발해야 하는 가정용 대신 산업용, 차량용 반도체로 갔죠. 스마트폰은 매년 바뀌겠지만, 산업용 기계로 가면 20년 이상 같은 반도체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기 위해선 단기간의 이윤을 좇지 말고, 20~30년을 바라보고 제품을 설계해야 하는데요. 투자자들이 이런 부분에서 차별점을 느꼈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반도체 시장의 현재는?

🍊 Orange: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는데, 한국 반도체 시장의 현황이 궁금합니다. 왜 한국은 팹리스 반도체에선 약체라는 평가를 받나요?

🎙️ 켄트 전 부대표: 흔히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고 얘기를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로 잘 알려졌지만,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반도체가 차지하는 부분은 20% 정도밖에 안 되고, 나머지 80%는 다 비메모리 반도체죠. 한국엔 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선두를 달리는 업체가 없어요. TSMC는 전체 생산 물량의 반이 애플로 가고, 나머지 반은 300개의 크고 작은 기업으로 갑니다. 반면 삼성은 고객사가 열 개 남짓에 불과하죠. TSMC는 이미 다양한 기업과 공정을 협력하고 있어요. 해외 팹리스 생산자에게 삼성 파운드리와 TSMC 중에서 고르라면 많은 기업이 TSMC를 선택할 수밖에 없죠 

📀 TSMC: 대만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입니다. 파운드리 분야 점유율 60%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객과 가장 정밀한 비메모리 반도체 제조 공정을 자랑합니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가 대표 고객사입니다.

한국은 팹리스 반도체가 성장할 수 없는 환경입니다. 한국 대기업의 전자제품을 보면 대만, 중국, 미국, 일본의 팹리스 반도체 기업이 설계한 제품이 들어 있어요. 사실 한국에서도 만들 수 있는 제품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 제품을 쓰지 않을까요? 검증이 안 됐기 때문입니다. 검증이 되지 않은 제품을 써주는 회사는 많지 않아요. 만약 함부로 썼다가 불량이 난다면 브랜드 가치가 하락하겠죠. 그래서 전자제품에는 양산 경험이 있는 회사의 검증된 제품을 많이 써요. 아직 한국에서 팹리스 제품을 만들어 대기업에 판매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만 중국 일본의 제품은 왜 쓸까요? 큰 내수 시장 덕을 많이 보긴 해요. 자국에서 양산해 내수 시장에서 품질을 검증하는 거죠해외에서 볼 때도 나름 검증된 반도체니까 믿고 쓸 수 있게 되는 거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내수 시장이 약해요. 한국 팹리스 기업이 납품할 수 있는 곳은 삼성 같은 대기업 정도인데, 대기업들은 양산 경험이 없는 우리 기업 제품은 쓰지 않아요. 자연스럽게 시장이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 Orange: 해외 영업은 어려울까요?

🎙️ 켄트 전 부대표: 우선 해외 시장에 나갈 때, '자국 대기업으로부터 검증받지 못한 제품을 어떻게 쓰냐'라는 꼬리표를 달고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는 영업력이 필요하지만, 해외 영업 경험이 있는 인력이 한국 기업에 많이 없어요. 그동안 해외 기업을 공략하는 대신 국내 대기업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에요.

이를 해결하려면 해외 기업과 기술적인 부분까지 잘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저희가 지속적해서 협력하고 있는 업체 70%가 해외에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 국내 기업을 비교하다 우리 기업을 택한 해외 기업에 이유를 물어보니, 전문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있었기 때문이라 답했죠

 

🍊 Orange: 한국 반도체 시장은 팹리스 반도체랑은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팹리스를 주목해야 할까요?

🎙️ 켄트 전 부대표: 반도체 시장이 비메모리 반도체로 위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비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이 80%에 달해요. 이런 비메모리 반도체는 퀼컴, 엔비디아, AMD와 같은 거대 팹리스 기업이 만들고 있죠. 팹리스 기업이 주도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전체 반도체 시장의 80%를 차지할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 읽으면서 궁금했던 반도체 용어가 있다면?

📀 메모리 반도체: 정보를 저장하는 용도의 반도체입니다. ROM RAM 등이 있습니다

📀 비메모리 반도체: 메모리 반도체가 아닌 모든 반도체를 뜻합니다. 대표적으로 컴퓨터의 CPU, GPU, 휴대전화의 AP, 카메라의 이미지 센서, 그리고 아날로그 반도체가 포함됩니다

반도체 연구 개발 중인 관악아날로그 직원들 © 관악아날로그 

🍊 Orange: 반도체 산업이 더 성장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켄트 전 부대표: 한국은 반도체 산업이 대기업 위주로 운영돼 중소 반도체 기업의 진입 장벽이 높아요. TSMC와 많은 중소기업이 함께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대만과 다르죠. 그래서 한국의 대기업도 팹리스 기업과 밀접하게 협력했으면 하는 희망이 있어요. 국내 팹리스 기업이 해외에서 신뢰받을 수 있게끔 양산과 납품 기회를 주는 것이죠. 해외 기업의 부품이 들어가던 국내 대기업 스마트폰에 국내 기업 제품이 80%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국 팹리스 산업은 크게 성장하겠죠.

국내 팹리스 기업도 현재 상황에 안주해서는 안 돼요. 기술 개발에 힘을 써야 합니다. 국내 기업은 부족한 규모와 자금 탓에 기존과 비슷한 제품을 따라 생산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기존 업체보다 더 싸게 팔 순 있겠죠. 하지만 결코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지 못합니다. 고객사에게 피드백을 많이 받을수록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기 수월해요. 하지만 아직 이런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에요. 인력난과 자금난도 심하죠.

그래서 정부가 도와야 해요. 현재 국내 팹리스 기업들은 제도적으로도 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중국 같은 경우엔 주요 도시마다 반도체 기업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만도 국가적으로 중소규모의 반도체 기업을 지원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국가가 주도하는 반도체 산업 육성 정책은 있지만, 회사가 제대로 느끼지 못해요. 반도체라고 하면 사람이 SK 하이닉스나, 삼성전자 정도만 생각하고 있죠. 지원 대상도 그렇습니다. 지원이 대기업 위주라, 저희까지 내려오지 않아요.

세계 5위권에 드는 팹리스 기업 중에 대만의 미디어텍이라는 기업이 있어요. 10년 전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작은 회사였지만, 한번 성장세를 타니 무섭게 커졌죠. 한국의 반도체 회사도 대부분 작지만 얼마든지 성장할 가능성이 있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업 하나만 성장하는 게 아니라, 한 기업의 성장이 촉매가 돼 시장 전체가 커지는 거예요.

기업 하나만 시장을 이끄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여러 기업이 시장을 함께 이끌어야 합니다. 대기업 위주의 시장에서 성과를 보이는 팹리스 반도체 기업이 하나둘씩 생겨나면, 다른 회사도 함께 올라와 시장 전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주리라 믿습니다. 최근 좋은 성과를 내는 리벨리온과 같은 반도체 기업은 한국 반도체 시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처럼 제2, 3의 성공 사례가 계속해서 생겨나야 합니다.

🔎 읽으면서 궁금했던 반도체 용어가 있다면?

📀 리벨리온: 인공지능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스타트업입니다. 지난해 시리즈A 투자에서 3,900억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고, 글로벌 인공지능 반도체 성능 경연대회에서 미국 엔비디아·퀄컴 같은 강자들을 제쳤습니다. 그동안 한국 팹리스 기업이 고성능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기에 더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관악아날로그 사무실 © 관악아날로그 

🍊 Orange: 한국 기업에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다는 뉴스가 자주 들립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 켄트 전 부대표: 남아있는 인력 중 괜찮은 인력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아닌 대기업을 가려고 합니다. 그 나머지 인력이라도 데려와야 하는데, 남은 인력의 몸값도 많이 올라가고 풀도 작아졌어요. 인력과 자금이 부족한 스타트업으로선 쉽지 않은 상황이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우선 대학의 인력풀이 커져야 합니다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도 무척 중요하죠. 요즘 대학에서 반도체에 특화된 과를 만들지만, 대학교만 졸업하고 반도체를 설계할 순 없기 때문이에요. 반도체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력을 대학과 학교에서 잘 가르쳐야 합니다. 두 곳이 상호작용할 때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반도체 연구 개발 중인 관악아날로그 직원들 © 관악아날로그 

🍊 Orange: 마지막으로, 2030이 반도체 산업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 켄트 전 부대표: 우리 생활의 모든 부분에 반도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반도체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그 비중은 점차 늘어날 겁니다. 기존 내연기관 차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양과 전기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양은 몇 배나 차이가 나요. 반도체 내부의 공학까지 알지 못하더라도 반도체가 왜 필요한지는 알았으면 해요. 세상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반도체는 오랫동안 기술 트렌드의 최전선에 있을 겁니다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반도체를 알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