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과 부동산 PF 위기, 한 방에 정리하기
🔍핵심만 콕콕
- 부동산 시장 침체와 함께 작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PF 위기
- 시공 순위 16위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과 함께 본격화하는 흐름인데요.
- 건설업계뿐 아니라 금융시장 전반으로 위기가 번질 수 있어 우려가 큽니다.
재작년부터 무서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건설업계에서 시작된 균열이 국가 경제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것. 부동산 시장은 싸늘하게 가라앉는데 금리는 천정부지로 뛰면서 공포감이 점점 짙어졌습니다. 한국 경제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한 해를 지나왔죠. 그런데 결국 위기가 터졌습니다. 중견 건설사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건데요.
부동산 PF, 왜 문제됐을까?
① 파리 날리는 부동산 시장
근 몇 년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었습니다. 집값은 떨어지고 거래량이 뚝 떨어졌는데요. 특히 미분양 물량이 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됐죠. 지난 1월 기준 미분양 주택이 약 75,000가구에 달했습니다. 근 10년 동안 이만큼의 미분양 물량이 쌓인 적이 없었죠.
집을 지어도 팔리지를 않으니 건설업 전반이 위축됐습니다. 2022년 4분기엔 건설공사 계약액 총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가까이 줄어든 걸로 나타났습니다. 아파트나 상가를 짓는 건축 분야만 살펴보면 계약액이 무려 24.8%나 감소했죠. 건설업계의 일감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죠.
② 발 동동 구르는 건설업계
지어놓은 집은 팔리지 않고, 집을 짓자는 계약도 급격히 줄었습니다. 건설업계의 수익이 나빠지는 건 당연한 일인데요. 그 결과 폐업 건설사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에 폐업하는 건설사만 해도 지난 3년간 연평균 폐업 건수에 육박할 거라는 예측이 나오죠.
아직 문을 닫지는 않았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선 건설기업도 많습니다. 영업이익만으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회사, 즉 수익과 부채 모두 심각한 지경에 이른 회사를 한계기업이라고 부르는데요. 지방의 중소 건설기업 중 무려 16.7%가 한계기업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수도권보다 지방의 상황이 나쁘고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상황이 나쁜 건 사실이지만, 정도가 다를 뿐 건설업계 전반이 휘청이고 있습니다. 작년 3분기 기준 상장 건설기업의 자본 대비 부채의 비율이 107%를 웃돌았죠. 2021년 기준 부채비율 97.8%와 비교하면 10% 가까이 오른 셈입니다.
③ 건설사에 돈 빌려준 제2금융권
문제는 건설업계의 위험이 그 울타리 안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 건설 사업에는 어마어마한 투자금이 필요합니다. 건설기업이 오롯이 감당할 수 없는 규모기 때문에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특히 부동산 사업의 결과 발생할 수익을 토대로 자금을 빌리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스(부동산 PF) 방식이 인기를 끌었죠.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만 해도 부동산 PF에 돈을 빌려주는 건 위험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건설한 부동산이 팔리지 않을 리 없고, 팔리기만 한다면 큰 수익이 날 테니까요. 대출 상환은 확실하고 수익은 쏠쏠한 부동산 PF. 제2금융권의 많은 금융회사가 부동산 PF 대출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제2금융권에서 빌려준 대출금 중 어쩌면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는 액수(익스포져, 위험노출액)가 115조 원에 달합니다. 카드사 등 여신전문금융사의 익스포져는 5년 만에 4배로 껑충 뛰었고, 저축은행의 익스포져도 2배 이상 늘었습니다. 사상 최대치에 달하는 액수죠.
건설사가 하나둘 망하기 시작하면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할 테고, 결국 제2금융권도 함께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미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는데요.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이 2배 가까이 늘어난 거죠.
④ 금융 시스템 차원의 위기로 번질지도 모르는데
현재 금융 시스템 전반이 아슬아슬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 주요 국가의 기준금리가 오를 대로 올라 시장의 돈줄이 마르고 있는데요. 작년엔 미국과 유럽에선 은행이 연달아 파산하는 일도 벌어졌죠.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부동산 PF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았습니다. 부동산 PF에서 시작된 파장이 제2금융권까지 닿으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지도 모르죠.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금융 시스템 전반이 요동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왔는데요.
부동산PF “응, 터질게”
지난 12월 28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결국 위기가 터졌다는 반응입니다. 다른 곳도 아니라 태영건설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태영건설은 국내 수많은 건설사 중에서도 시공 능력으로 20위 내에 드는 중견 기업인 데다, 코스피에 상장됐을 만큼 규모 있는 건설사인데요. 이런 태영건설이 빚을 못 갚겠다고 백기를 든 건 충격적일 수밖에 없죠.
2020년대 들어서 ‘부동산PF가 위험하다’ ‘언제 터질지 모른다’ 하는 경고가 빗발쳤습니다. 그 조마조마하던 부동산PF가 마침내 터져버렸고, 결국은 중견 건설사를 고꾸라뜨린 상황이죠.
원래 부동산PF는 사업을 추진하는 시행사가 받는 대출입니다. 하지만 금융사로서는 사업성만 보고 돈을 빌려주긴 불안하니, 일반적으로는 시공을 하는 건설사의 보증을 요구합니다. 달리 말하면, 부동산 사업이 흔들려서 시행사가 대출을 갚지 못할 때 건설사가 채무를 떠안는 구조죠. 태영건설도 그렇게 PF 채무에 보증을 섰는데요. 당장 지난달 성수동 오피스텔 사업에서 480억 원의 보증 채무의 만기가 돌아왔고, 앞으로 1년 동안 3조 원 이상의 채무 만기가 돌아올 예정이었습니다. 태영건설은 그 채무를 다 갚지 못하겠다며 결국은 워크아웃을 신청한 겁니다.
살아난다, 못 살아난다, 살아난다 …
아직 태영건설이 무너진 건 아닙니다. 지금은 워크아웃을 신청한 단계죠. 법적으로는 ‘채권단 공동관리’, 보통은 ‘기업 개선 작업’이라 불리는 워크아웃. 당장 빚을 갚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가망이 있는 기업에 회생의 기회를 주는 제도입니다. 워크아웃 시 빚을 받아야 하는 채권단은 상환 기간을 미루거나 이자와 채무를 감면하는 등의 방식으로 채무 기업이 숨을 돌릴 시간을 마련해주죠.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긴 했지만, 신청을 받을지 말지는 채권단의 결정입니다. 채권단의 75% 이상이 동의를 해줘야만 워크아웃 절차에 들어가는데요. 채권단은 워크아웃으로 채무 기업의 손해와 위험을 함께 지게 되는 만큼, 태영건설로선 채권단을 설득하기 위해 합리적인 계획과 분명한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어떻게든 회사를 살려서 빚을 갚겠다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하죠.
하지만 태영건설이 내놓은 자구책에 대해 불충분하다는 비판을 넘어 회생 의지가 없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부동산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하면서 위기가 발생한 건 맞지만, 안일하게 기업을 운영한 경영자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따라서 채권단은 태영건설 오너 일가가 3천억 원 정도의 개인 돈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었죠. 하지만 태영건설이 내놓은 자구책을 보니 사재 출연 내용이 쏙 빠져있었죠.
게다가 채권단은 태영건설이 알짜 계열사인 SBS의 지분을 매각하길 기대하는데, 태영건설의 대주주는 가능한 한 SBS를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채권단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결국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 채권단이 신청을 거절하고 결국 태영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갈지도 모릅니다.
자칫하면 법정관리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황. 워크아웃과 달리 법원의 주도로 이뤄지는 법정관리는 시작되는 그 즉시 모든 채무가 동결되고 기존에 맺은 계약도 자동 해지되죠. 채무 삭감도 기대할 수 없고 사실상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전면 중단되는 겁니다. 이에 금융 당국도 태영건설을 작심 비판했는데요. 1월 7일까지 채권단의 마음을 돌릴만 한 대안을 내놓으라고 경고했죠.
건설업계 “야 너두…?”
하지만 정부도 태영건설이 무너지길 바라지 않습니다. 큰 기업이 무너지면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죠. 당장 태영건설이 보증을 선 채무 규모만 해도 9조 원 이상인데요. 이대로 태영건설이 무너지면 대출을 내준 금융권이 흔들리고, 대출을 받은 사업장, 연관된 협력 업체도 요동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히도 걱정하는 것보다는 충격이 크지 않으리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당연히 태영건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곳엔 파장이 번질 수밖에 없지만, 이번 사건만으로 건설업계가 한꺼번에 주저앉는다거나 금융위기가 터지지는 않으리라는 건데요. 금융당국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해 자금을 공급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에 나선 상황입니다. 태영건설 위기가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태영건설 사건이 무서운 건, 이게 하나의 신호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태영건설이 무리해서 부동산PF를 일으키고 보증을 선 건 사실이지만, 이만큼이나 규모 있는 건설사가 무너졌다는 건 다른 건설사도 언제든 비슷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죠.
이미 부동산PF 연체율이 위험한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폐업하는 중소 건설사가 작년에 비해 확연히 늘고 있습니다. 내년에도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이어진다면 제2의 태영건설 사태, 나아가선 건설사 줄도산을 피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태영건설으로 터진 부동산 PF 위기에 모두가 집중하는 이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