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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월 1일은 만우절입니다. 1년 중 사람들끼리 가벼운 장난이나 거짓말을 쳐도 충분히 용인되는 하루인데요. 가령 중고등학생의 경우 학교에서 선생님을 대상으로 장난을 치기도 하고, 대학생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등교하기도 하죠. 이처럼 만우절은 기존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상식을 깨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기존에 짜인 틀에서 벗어나 창의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기업들이 만우절을 마케팅과 브랜딩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정도가 과하지만 않다면, 어느 정도의 창의력은 용인되는 날이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단순히 ‘재미’를 위해 기업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광고, 이벤트 등의 마케팅을 진행하지는 않겠죠. 모든 기획에는 뚜렷한 목표와 기대효과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여러 기업의 만우절 마케팅 사례를 한 번 살펴볼 텐데요. 그 이면에 담겼을 목표와 이로 인한 기대효과에 따라 해당 사례들을 분류하고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화제성 유도
만우절을 맞이해 기업들이 뜬금없는 광고를 출시하게 되면, 소비자는 “이거 진짜야?”라며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사실 이 지점에서 이미 기업들은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셈인데요. 기업들은 소비자로 하여금 관심과 흥미를 유도해내, 자사 제품 및 브랜드에 대한 화제성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레고 ‘지압팩’ 출시
2019년 만우절, 장난감 회사 레고(LEGO)는 페이스북을 통해 신제품 출시 포스터를 공개합니다, 바로 “발바닥 지압팩”이었습니다. 이들은“어차피 아플 거 제대로 밟자”라는 슬로건과 함께 해당 제품을 소개했는데요. 사실 이는 만우절을 기념해 레고가 올린 게시물이었으며 실제로 제품이 출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레고를 밟아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하겠지만, 레고가 이런 게시글을 올리기 훨씬 이전부터, 땅에 떨어진 레고 조각을 밟으면 굉장히 아프다는 내용의 ‘밈(meme)’이 이미 널리 사용돼 왔습니다. 레고는 이처럼 널리 퍼진 일종의 애로사항을 마치 실제 제품으로 출시한 것처럼 홍보함으로써 소비자들 사이에서 화제성을 유도해낸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해당 홍보 게시글은 페이스북에서 1천 5백개 이상의 ‘좋아요’를 기록하며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대중이 공유하고 있는 공감대로부터 착안해 성공적으로 화제성을 불러일으킨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빙그레 ‘멘붕어싸만코’, ‘졸음사냥’ / 롯데제과 ‘메론먹은 죠스바'
2021년 만우절, 빙과류 제조 회사인 빙그레는 대표 아이스크림인 ‘붕어싸만코’와 ‘더위사냥’의 새로운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바로 ‘멘붕어싸만코’와 ‘졸음사냥’이었죠. ‘멘붕어싸만코’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태인 ‘멘붕’과 ‘붕어싸만코’의 합성어인데요, 빙그레 측은 붕어싸만코에 불닭 소스를 첨가해 매운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인 ‘멘붕어싸만코’를 출시했습니다. 멘붕어싸만코는 120만개 한정 수량으로 제작돼 판매되었습니다. ‘졸음사냥’의 경우, 기존 커피맛이 났던 ‘더위사냥’과 달리, 시판되는 에너지드링크의 맛을 띠었으며 타우린을 1000mg 함유했다고 밝혔죠.
졸음사냥이야 사실 그 맛이 어느정도 예상은 간다지만, 멘붕어싸만코는 그 맛이 쉽게 상상이 가진 않습니다. 아이스크림은 원래 단맛과 청량감을 강조하는 반면, 멘붕어싸만코는 ‘매운맛’에 방점을 둔 제품이기 때문이죠. 빙그레 관계자는 “만우절을 맞아 소비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이색 제품을 기획했다”며 “익숙한 제품의 새로운 모습이 소비자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고 말했는데요. 이는 일종의 펀(fun) 마케팅에 해당합니다.
펀 마케팅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소비자의 재미를 자극하는 마케팅 방식입니다.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맛의 제품을 출시해 소비자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도하는 방식도 이에 포함되는데요. 소비자들의 자발적 홍보 등을 통해 화제성 도모, 브랜드 인지도 상승효과 등을 기대해볼 수 있게 됩니다.
기존 제품에 대한 고정 관념 탈피
거짓말이란 본질적으로 ‘참이 아닌 것’을 의미하죠. 브랜드에게 있어 ‘지금까지 브랜드가 유지해 온 이미지, 표방해 온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참’이라고 분류한다면, 지금까지 브랜드가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은 ‘거짓’이라고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만우절은, 기업들이 지금까지 기업이 쌓아 온 이미지에서 탈피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창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한 바로 대표적인 기업이 티파니입니다.
176년간 유지해 온 컬러를 포기한 티파니
다이아몬드 액세서리 전문 브랜드 티파니(Tiffany & Co.)는 1837년에 창립돼 지금까지도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하이엔드 쥬얼리 브랜드입니다. 이런 티파니를 대표하는 색이 밝은 민트색인 ‘로빈스 에그 블루’, 일명 ‘티파니 블루’인데요. 1845년부터 티파니의 시그니처 컬러로 활용돼 왔습니다. 무려 176년 간 동일한 시그니처 컬러를 사용해오던 티파니가 돌연 2021년 만우절에 인스타그램을 통해 하나의 게시글을 올립니다. 바로 노랑색 배경에 Tiffany라는 글씨가 적힌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티파니는 이 사진과 함께 “저희의 새로운 상징색을 소개합니다(Introducing our new House color.)”라는 캡션을 달았습니다. 비록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세긴 했지만 해당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무려 42만개의 좋아요를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되긴 했어도 어쨌거나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었죠. 이에 고무된 티파니는 머지않아 LA 비버리 힐스(Beverly Hills)에 온통 노란색으로 칠해진 티파니 옐로 팝업스토어를 오픈합니다. 그리고는 ‘옐로 다이아몬드 컬렉션’까지 성공적으로 홍보해내는데 성공합니다.
사실 티파니의 이와 같은 만우절 이벤트가 더 의미 있는 이유는 이것이 티파니의 리브랜딩 전략 중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2021년 1월, 세계 최대의 명품 브랜드 기업인 LVMH에 인수된 티파니는 기존의 ‘올드하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리브랜딩을 시도합니다. 이에 위처럼 시그니쳐 컬러를 바꿔보기도 하고, 새로운 광고 모델을 기용하기도 하며, “너희 어머니의 티파니가 아니다(Not Your Mother’s Tiffany)”와 같은 광고 카피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리브랜딩이란 결국 회사의 노선 변경을 의미하는데, 오랜 기간 명맥을 유지해온 기업일수록, 고유 소비층이 더욱 굳건할수록 리브랜딩 시 큰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기업들은 이런 저항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창구로 만우절을 택한 것이죠.
자사 제품의 핵심 기능 강조
마지막으로, 기업들은 만우절 이벤트를 통해 오히려 역설적으로 자사 제품의 핵심가치나 본질을 홍보할 수도 있습니다. 창의력 넘치는 만우절 마케팅을 통해 화제성을 이끌어낸 후, 자사가 브랜딩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는 방식이죠. 사례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개합니다, 포르쉐 녹슨 에디션
2021년 만우절, 포르쉐는 유튜브를 통해 앞으로 자사 자동차를 ‘녹슨 색’으로 색칠할 수 있다고 홍보했습니다. 그런데, 한 대에 1억씩이나 하는 차를 굳이 오래돼 보이고 녹슨 색으로 칠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쯤 되면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이것도 포르쉐의 만우절 마케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포르쉐가 제시한 ‘녹슨 색’이 아니라, ‘녹슨 색’으로도 차량을 색칠할 수 있다’라는 부분입니다. 포르쉐는 창립 초창기부터 고객을 위한 개인화 서비스를 제공해왔으며 이는 포르쉐의 핵심 가치로 간주돼 왔습니다. 그리고 차량 색상에 대한 선택폭에서 이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나는데요. 가령 포르쉐 718모델과 911 모델의 경우 105가지의 차량 색상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포르쉐는 위 만우절 마케팅을 진행한 이후, 비록 ‘녹슨 색’은 만우절 장난이지만, 차량 구매 전에 본인이 원하는 색상으로 칠할 수 있게 해주는 ‘Paint to Sample’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공지했습니다. 고객의 니즈에 맞춰 다양한 색상을 제공한다는 본인들의 핵심 역량을 드러낸 것인데요. 이를 보여주기 위해 ‘녹슨 색’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사례를 상정한 것입니다.
넷플릭스에서 뭐 보지? 왓챠가 추천해드립니다; 왓플릭스
2020년 만우절, 왓챠는 유튜브를 통해 “어떻게 넷플릭스를 안 쓸 수가 있어”라는 제목의 영상을 업로드합니다. 그리고 본 영상에서 왓챠가 ‘왓플릭스(watflix)’라는 서비스를 출시해 직접 넷플릭스 작품을 추천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심지어 netflix.watcha.com 이라는 공식 링크까지 달아가면서까지요. 장난에 불과한 여느 만우절 광고인 줄 알았으나 왓챠는 실제로 해당 서비스를 출시해 운영했습니다.
‘왓챠플레이’라는 OTT 플랫폼까지 직접 런칭한 왓챠 측이 경쟁 구도에 있는 넷플릭스의 작품을 추천한다니. 다소 역설적입니다. 이런 역발상 덕분에 ‘왓플릭스’ 서비스는 대중 사이에서 충분히 회자되며 화제를 모으는 데 성공합니다. 만우절 장난이더라도 왓챠 측은 왜 이런 서비스를 출시했던 것일까요? 이는 왓챠플레이를 출범하기 이전, 왓챠의 뿌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원래 왓챠는 영화 추천·평가 서비스로 시작한 회사입니다. 실제로 추천 정확도를 측정하는 RMSE 지수에서 넷플릭스보다 36%가량 우수한 결과를 받은 바 있는데요. 왓챠 측은 왓플릭스 서비스를 통해 왓챠의 추천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고, 왓챠의 추천 기술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왓챠 측은 왓플릭스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들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각 작품을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 중 어디에서 볼 수 있는지도 함께 표시해주었습니다. 현재 해당 서비스는 왓플릭스라는 이름 대신, 왓챠피디아(watchapedia) 라는 이름의 서비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왓챠는 이 만우절 마케팅을 통해 자사가 ‘작품 추천’이라는 핵심 가치를 중시한다는 점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라는 경쟁 기업까지도 기발하게 활용한 것이죠.
쿠키를 구우랬더니 진짜 과자를 구웠네; 네이버웹툰
매년 만우절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브랜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네이버웹툰입니다. 네이버웹툰은 매해 하나의 통일된 컨셉을 바탕으로 만우절 단 하루동안 모든 웹툰 썸네일을 교체하는 이벤트를 진행해왔는데요. 그 중에서도 2021년 만우절, 네이버 웹툰은 기존의 모든 썸네일을 과자로 만들어 교체하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왜 굳이 ‘과자’였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네이버웹툰의 수익 모델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네이버웹툰은 몇 주 후에 나올 콘텐츠를 미리 열람하거나, 이미 단행본으로 유료화된 콘텐츠를 대여 및 구매하기 위해 ‘쿠키’라는 자체 결제 수단을 활용하는 방침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에 소비자들은 네이버웹툰에 과금하는 행위를 ‘쿠키를 굽는다’라고 흔히 표현했는데요. 네이버 측은 2021년 만우절을 기념해 직접 과자를 구워 이를 썸네일로 제공한 것이고, 이를 통해 이용자로 하여금 흥미를 유도하고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한번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업들에게 만우절은 평소보다도 더 파격적인 마케팅과 브랜딩이 가능한 기회입니다. 이에 소비자들은 여러 브랜드들이 이를 어떻게 영리하게 활용하는지, 누가 훨씬 예측 불가능한 마케팅을 펼치느냐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만우절 마케팅에 정답은 없을지 몰라도, 오답이 존재하긴 합니다. 실제로 지난 2021년에는 폭스바겐(Volkswagen)이 사명을 볼츠바겐(Voltswagen)으로 변경한다는 마케팅을 펼쳤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 대상이 되기도 했죠. 이처럼 선을 넘는 마케팅은 여론의 뭇매를 받으며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 먹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하루 동안 다양한 기업들의 만우절 마케팅을 접하게 되실텐데요. 각 기업이 "왜" 이런 마케팅을 펼쳤는지 한 번 고민해본다면 작년 만우절과는 또 느낌이 다르실 겁니다. 그럼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