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에 관심이 있다면 '오픈런'과 '샤테크',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두 단어 모두 명품 브랜드 샤넬과 연관이 있습니다. 매장 문이 열리면 달려가 구매하는 오픈런 열풍의 시작이 바로 샤넬이었죠. 샤테크는 ‘샤넬'과 ‘재테크'의 합성어입니다.
샤넬은 20세기 초 모자 전문점으로 시작했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패션·향수·뷰티를 아우르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는데요. 관련 신조어가 생길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샤넬이 오랜 기간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올해 출시된 N°1 DE CHANEL 뷰티 라인을 중심으로, 샤넬의 브랜드 철학과 새로운 시도를 살펴보겠습니다.
샤넬의 지난 100년
1910년 창립 이후 2019년까지, 샤넬을 이끈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가브리엘 샤넬과 칼 라거펠트인데요. 둘의 지휘 아래 샤넬은 브랜드 철학을 확립하고 상류층을 공략했습니다.
단순·편리함을 향한 혁신
샤넬의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은 단순함과 편리함으로 패션계에 혁명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여성 패션은 화려하고 거추장스러웠는데요. 샤넬은 반대로 우아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을 창조했죠. 샤넬의 패션 철학은 곧 브랜드 '샤넬'의 철학이 됐습니다.
라거펠트는 브랜드 이미지 확립에 공헌했습니다. 라거펠트가 고안한 두 개의 ‘C’가 겹쳐 있는 로고는 샤넬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죠. 그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가브리엘 샤넬이 남긴 아이덴티티를 발전시키기도 했는데요. 샤넬의 대표작이었던 트위드 재킷을 경쾌한 스타일로 재창조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상류층을 겨냥한 마케팅
- 초창기 샤넬은 입소문 마케팅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대중에게 직접 브랜드를 홍보하는 대신 매장에 N°5 향수를 뿌렸는데요. 매장을 오가는 고객들이 자연스레 향기를 접하고 입소문을 퍼뜨리도록 했죠.
- 1970년대 N°5 향수의 이미지가 추락했을 때 샤넬은 희소성 마케팅으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CEO인 알랭 베르트하이머는 일용품 매장 및 할인점에서의 N°5 판매를 중단했는데요. 정식 매장에서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 제품의 희소성을 높였습니다.
- 샤넬은 신제품도 남발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품의 품질과 장인 정신을 어필했죠.
변화의 바람이 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샤넬에도 변화가 요구됐습니다. 혁신의 가치가 퇴색되고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는데요. 라거펠트의 “미투 운동이 지긋지긋하다”는 발언은 불매 운동으로 번졌습니다. 30년 넘게 샤넬 쇼를 담당한 미셸 고베르 DJ는 인종차별 행위로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이에 샤넬은 새로운 리더를 영입하고 디지털 마케팅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리더 발탁
- 2019년, 라거펠트의 후임으로 버지니 비아르가 지목되며 변화의 기운이 감지됐습니다. 라거펠트 시절 샤넬은 여성 인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는데요. 여성 수석 디자이너로서 샤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리라 기대를 모았죠.
- 연초에는 샤넬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여성 CEO로 리나 나이르가 발탁됐습니다. 심지어 나이르는 패션업계가 아닌 영국 소비재 기업 유니레버에서 30년간 근무했는데요. 유니레버는 지속 가능 경영을 실천해왔기 때문에 나이르의 영입은 ESG 경영의 신호탄으로 여겨졌습니다.
디지털 마케팅
- 팬데믹 상황에서 인스타그램을 활용한 마케팅이 돋보였습니다. 벨기에 아티스트 앙젤의 라이브 공연을 인스타그램으로 송출해 소비자들이 안방에서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했죠. 샤넬의 뮤즈와 앰버서더가 등장하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2021 S/S 컬렉션을 예고하기도 했는데요. 그 결과 샤넬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수는 약 5,190만명(2022.09.01 기준)으로 럭셔리 브랜드 계정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Inside CHANEL’ 시리즈를 통해 가브리엘 샤넬의 일대기와 브랜드의 상징 등을 소개했죠.
‘원점'으로 돌아간 샤넬
변화에 시동을 건 샤넬은 차세대 뷰티 라인인 N°1 DE CHANEL을 런칭했습니다. 컬렉션은 레드 까멜리아를 주성분으로 하는 총 11개의 제품으로 구성됩니다.
N°1과 레드 까멜리아, 무언가 떠오르지 않나요? 샤넬을 상징하는 N°5 향수와 흰색 까멜리아를 계승한 것이죠. 그러면서도 ‘1’이라는 숫자와 강렬한 레드 컬러를 선택했습니다. 브랜드 철학은 확고히 하되,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메시지로 보입니다.
첫 번째 변화, 지속가능한 뷰티
N°1 컬렉션이 선보인 가장 큰 혁신은 지속가능성입니다. 샤넬은 제품의 내용물과 패키지 전반에 친환경 코드를 도입했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내용물: 자연 유래 성분을 최대 97% 함유하고 있습니다.
- 패키지: 제품의 무게를 줄였고 전체 제품의 80%를 유리로 제작했습니다. 크림의 캡은 바이오 기반 소재로, 용기는 리필이 가능하게 만들었는데요. 두 번 리필하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합니다. 제품 정보는 종이 리플렛이 아닌 QR 코드에 담았죠.
두 번째 변화, 자세는 낮추고 경험은 늘리고
마케팅 전략 또한 이전과는 다릅니다. 온라인 구매 기회를 확대하고 소비자가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오프라인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N°1 라인의 10개 제품을 런칭했습니다. 9월 말까지 다양한 서비스와 기프트도 제공할 예정인데요. 앞서 N°5 때의 희소성 마케팅과는 대조적입니다.
- 지난 8월 4일부터 21일까지 N°1 DE CHANEL GARDEN 팝업 스토어를 운영했습니다. 팝업 스토어는 다양한 스토리와 액티비티로 구성되었는데요. 소비자가 브랜드와 직접 상호작용하는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그래도 잃지 않은 샤넬의 정신
변화는 추구하되, 샤넬의 정신은 잃지 않았습니다. 샤넬의 홀리스틱 뷰티 철학을 컬렉션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 샤넬은 ‘마음-몸-감각’은 서로 영향을 미치고 뚜렷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이를 ‘홀리스틱 뷰티’라고 합니다.
- 컬렉션의 슬로건 ‘아름다움에 대한 앞선 생각’은 샤넬의 홀리스틱 뷰티 철학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컬렉션에도 그녀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강조한 것이죠.
다른 명품 브랜드는?
변화를 겪는 곳은 샤넬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명품 브랜드 역시 디지털 마케팅과 친환경 전략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 프라다는 화상 통화로 소비자에게 다가갔습니다. CEO 미우치아 프라다와 수석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가 화상 연결을 통해 전 세계 패션스쿨 재학생들의 질문에 답했는데요. 인터뷰 영상은 유튜브에도 업로드됐습니다.
- 프랑스의 명품 그룹 LVMH는 ‘노나 소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사용하지 않은 원단을 판매합니다. 환경을 지키는 것은 물론, 젊은 디자이너들은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 원단을 구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 에르메스는 리필할 수 있는 립스틱과 블러셔를 생산하는데요. 2025년까지 모든 패키징을 100% 재생 또는 재활용할 수 있는 자재로 만들 계획입니다.
패션 업계는 디지털 전환에 보수적이고 환경 문제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는데요. 오명을 벗기 위한 패션 업계의 변화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패션은 변화하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라고 말했습니다. N°1 DE CHANEL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제품과 마케팅은 달라졌지만, 브랜드 철학은 영원하다’.
경쟁 브랜드도 디지털·친환경 기조로 탈바꿈하는 가운데, 과연 N°1은 샤넬의 새로운 ‘넘버원'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