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멈추지 않은, 지브리의 회전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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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멈추지 않은, 지브리의 회전목마

디즈니랜드, 유니버설 스튜디오, 에버랜드. 듣기만 해도 다양한 테마파크들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요. 하나가 더 추가됐습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명가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의 ‘지브리 파크’가 지난 1일 문을 열었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지브리 작품 속 풍경들이 현실 세계에 구현된 것이죠. 전 세계 지브리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데요.

그동안 지브리는 많은 부침을 겪어왔습니다. 2014년에는 제작팀이 해산되기까지 했죠. 하지만 지브리는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지브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은 어떠할지 알아보겠습니다.


작품으로 보는 지브리 역사

© 스튜디오 지브리

지브리 작품들은 언제 봐도 촌스럽지 않은 감성을 보여줍니다. 지브리의 역사는 꽤 오래됐는데요. 시작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죠. 지브리를 대표하는 작품들과 함께 긴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브리의 시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천공의 성 라퓨타>(1986)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지브리의 전신인 ‘톱 크래프트’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입니다. 감독을 맡았던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작품이 성공하자, 출판사 도쿠마 쇼텐의 투자를 받아 톱 크래프트를 인수했죠. 그리하여 1985년 ‘스튜디오 지브리’가 탄생했습니다. ‘지브리’는 리비아어로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을 뜻하는데요. 애니메이션 업계에 바람을 일으키자는 의미로 지었다고 합니다.
  • 스튜디오 지브리의 이름으로 처음 선보인 작품 <천공의 성 라퓨타>입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을 배경으로 하늘을 나는 성들과 비행선이 등장하는데요. 비행 모티프는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반복됩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의 장면 © 1986 스튜디오 지브리

대중적 인기: <이웃집 토토로>(1988), <마녀 배달부 키키>(1989)
  • <이웃집 토토로>에서는 일본을 배경으로 소박한 정서를 그려냈습니다. 극장에서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DVD와 토토로 인형의 인기로 엄청난 수익을 냈는데요. 토토로 인형은 60만 개 이상이 팔렸습니다.
  • <마녀 배달부 키키>는 앞선 작품들에 비해 가벼운 주제로 개봉 당시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 수익을 기록했는데요. 이때 벌어들인 수익을 토대로 지브리는 정사원 채용제도를 도입해 본격적으로 회사를 키워나갔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장면 © 스튜디오 지브리

변화와 회귀: <바다가 들린다>(1993), <모노노케 히메>(1997)
  • <바다가 들린다>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청춘물입니다. 세대교체를 위해 신인 제작진에게 맡긴 작품이기도 하죠. 뛰어난 영상미와 스토리라인을 자랑하지만, 하야오 감독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묘사를 혹평했는데요.
  • 결국 다시 그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작품 <모노노케 히메>가 공개됐습니다. <모노노케 히메>는 자연과 인간 문명의 대립, 생명과 사랑이라는 주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내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193억 엔의 매출을 올려 당시 기준 일본 영화 흥행 기록 1위를 달성했죠.
<모노노케 히메>의 장면 © 스튜디오 지브리

지브리의 정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 지브리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두 작품입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당시 일본에서 2,3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약 20년간 가장 흥행한 일본 영화남아있었죠. 사실 하야오 감독은 <모노노케 히메> 이후 은퇴를 선언했지만, 감독을 맡았던 콘도 요시후미가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다시 메가폰을 들었습니다.
  •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음악 감독 히사이시 조가 선보인 OST ‘인생의 회전목마’로도 유명한 작품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줄거리가 난해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원작자인 소설가 다이애나 윈 존스는 작품을 잘 이해했다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트레일러 영상 

지브리를 이끌어 온 사람들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 © 스튜디오 지브리

지브리는 장인 정신으로 유명한데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지브리를 이끌어 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지브리의 전설적인 작품들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필두로 한 네 명의 재능과 노력으로 탄생했습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 지브리의 정체성입니다. ‘도에이 애니메이션’에 입사해 <미래 소년 코난> 등을 연출하며 감독으로서 이름을 알렸는데요. 이후 타카하타 이사오, 스즈키 토시오와 함께 지브리를 설립해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냈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의 대가로 컴퓨터 그래픽을 앞세운 경쟁사들이 늘어나는 와중에도 손 그림을 고수했죠. 작품에 드러나는 철학도 일관적인데요. 그의 작품에는 꾸준히 비행, 여성 주인공 등의 모티프가 발견됩니다. 특히 여성 주인공을 내세우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신을 밝힌 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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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하고 자부심 강한 소녀들이 두려운 마음을 다해 싸우는 것에 대해 두 번 생각하지 않습니다. 친구나 지지자가 필요하겠지만 구세주는 절대 필요하지 않습니다.
  • 타카하타 이사오: 하야오 감독과는 도에이에서 선후배 관계로 만났습니다. 하야오가 연출을 맡았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프로듀서를 맡았는데요. 이후 지브리에서도 계속해서 합을 맞춰왔습니다. 하야오와 달리 일본을 배경으로 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낸 감독인데요. <반딧불이의 묘>, <가구야 공주 이야기>가 대표작입니다.
  • 스즈키 토시오: 지브리의 살림꾼입니다.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쥬> 기자로서 하야오와 이사오 감독의 작품을 취재했던 것이 인연이 돼 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죠. 출판사 도쿠마 쇼텐의 투자를 받아내 지금의 지브리가 있게 한 인물이기도 한데요. 지브리와 관련된 인터뷰와 프로젝트 전반을 책임지는 지브리의 얼굴입니다.
  • 히사이시 조: 지브리 감성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OST죠. <모노노케 히메>의 ‘아시타카의 전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인생의 회전목마’ 등 작품의 분위기를 그대로 녹여낸 명곡들을 선보였는데요. 아름다운 OST들은 그의 장인 정신에 기반해 탄생했습니다. 스튜디오가 아닌 오케스트라 홀에서 녹음을 진행해 곡에 서정성과 부드러움을 더하죠.

지브리의 미래는?

은퇴_진짜최종_final

미야자키 하야오는 고령 등을 이유로 여러 차례 은퇴를 선언했는데요. 그러나 매번 은퇴를 번복하고 복귀를 알려 화제가 됐죠.

  • 1차 은퇴는 1997년 <모노노케 히메>를 제작한 후 발표했습니다. 다만 지브리에 아낌없이 투자했던 출판사 도쿠마 쇼텐이 무너지면서 지브리도 위기를 맞았는데요. 결국 하야오가 구원 투수로 나설 수밖에 없었죠.
  • 2차는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선보인 이후였습니다. 체력적인 이유로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손을 떼겠다고 발표했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참여하며 다시 돌아왔습니다.
  • 3차는 2008년 개봉한 <벼랑 위의 포뇨> 이후였는데요. <하울의 움직이는 성>보다 흥행 성적이 낮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은퇴를 번복했습니다.
  • 4차는 2013년 <바람이 분다>를 공개한 뒤였습니다. 그러나 2014년 제작팀 해체 선언 등 지브리가 위태로워지자 은퇴를 철회했습니다.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바탕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중이죠.

세대교체의 실패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를 선언할 때마다 지브리는 크게 휘청였는데요. 그를 이을 만한 후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많은 인재가 지브리를 거쳐 갔지만, 하야오의 고집으로 떠났죠.

  • <바다가 들린다>를 연출한 모치즈키 도모미는 하야오를 이을 신예로 주목받았는데요. 하야오 감독은 지브리에서 추구하는 청춘물이 아니라며 ‘최악’이라 평가했습니다. 결국 도모미는 후계자 자리에서 탈락했죠. 훗날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는 하야오의 혹평에 대해 ‘자신이 절대 만들 수 없는 작품’이 나온 것을 못 견딘 것이라 밝혔습니다.
  • 호소다 마모루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프로젝트를 맡았는데요. 2년 만에 중도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거대한 프로젝트에 대한 압박감과 하야오의 간섭 때문으로 추정되는데요. 이후 위기를 딛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 <늑대 아이>로 연출자로서 인정받게 됐죠.
  • 안도 마사시 역시 지브리에 몸을 담았었는데요.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작화 감독으로 주목받았지만, 하야오 감독과 계속 의견이 충돌했습니다. 지브리를 떠난 이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서 활약해 전성기를 맞이했죠.
<너의 이름은> 예고편
  • 결국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남아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아버지의 실력에는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변화하되 신중하게

© 2022 스튜디오 지브리

변화하지 않을 것만 같던 지브리도 최근에는 새로운 움직임을 보여주는데요. 스즈키 프로듀서는 새로운 것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지브리의 방침 중 하나라며, 그 변화가 당연한 것이 됐을 때 가장 마지막으로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습니다.

  • 수작업을 고수하던 지브리가 최초로 3D CG 애니메이션 <아야와 마녀>(2020)를 선보였습니다. 극사실주의를 표방하는 디즈니 등과 달리 인형극에서 착안해 차별화를 꾀했는데요.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지브리’에 기대했던 퀄리티에는 부응하지 못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룹니다.
<아야와 마녀> 트레일러 영상
  • 지브리는 스트리밍 서비스도 거부해왔는데요. 2020년 1월부터 넷플릭스에 작품을 공개했습니다. 넷플릭스는 무려 2조 4천억 원을 투자했죠.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인 만큼, 지브리 작품이 전 세계에 다시 한번 알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 넷마블에서 출시한 게임 ‘제2의 나라’는 지브리와 일본 게임 제작사 레벨파이브가 만든 ‘니노쿠니’의 모바일 버전인데요. 일러스트에 지브리가 참여해 특유의 감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음악도 들어볼 수 있죠.
제2의 나라 플레이 장면 © 넷마블
  • 지난 1일에는 일본 아이치현에 테마파크 ‘지브리 파크’를 개장했습니다. ‘지브리 대창고’, ‘청춘의 언덕’, ‘돈도코 숲’ 등 지브리의 작품들을 테마로 한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눠지는데요. 디즈니랜드처럼 놀이기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 장면의 재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방문객들이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누릴 수 있도록 했죠. 연간 180만 명의 방문객과 480억 엔에 달하는 경제적 파급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아쉬운 점으로 전 구역 예약제와 구역별 입장료가 꼽히기도 하죠.
© 지브리 파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차기작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는데요. 해당 작품이 개봉되면 스튜디오 지브리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변화를 꾀했지만, 그에 대한 비판도 직면한 지브리인데요. 토시오 프로듀서는 과거 인터뷰에서 지브리의 성공 비결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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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심플하다. 기괴한 짓을 하거나 이상한 기획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작품을 이해하고 그 내용을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잘 전달한다. 그것뿐이다.

지브리만의 ‘심플한’ 철학이 다시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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