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그야말로 '젤리' 전성시대인데요. 츄잉푸드 매출 1위를 지켜왔던 껌이 젤리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입니다. 그 차이는 매년 큰 폭으로 벌어져, 젤리 매출은 껌의 4배 이상으로 치솟았죠. 젤리가 주목받는 요즘, 단연 돋보이는 브랜드가 있는데요. 독일의 젤리 브랜드 하리보(HARIBO)입니다.
하리보는 전 세계에서 100년 넘게 사랑받아온 브랜드인데요. 국내에서도 2016년부터 매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특히 올해는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곰 모양 젤리 ‘골드베렌(Gold Bear)’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전시회도 열렸는데요. 소비자를 사로잡은 하리보의 달콤한 비결, 같이 알아볼까요?
100년의 역사
하리보의 시작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쟁이라는 위기에도 굳건하게 자리를 지켜왔는데요. 창립자와 그의 가족들이 3대째 사업을 이어왔습니다.
- 하리보는 1920년 독일 본에서 탄생했습니다. 한스 리겔은 집 뒷마당의 작은 세탁실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요. ‘하리보’는 '한스 리겔(Hans Riegel)'과 '본(Bonn)'에서 각각 두 글자를 따와서 지은 이름입니다.
- 한스 리겔은 제과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딱딱한 사탕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러나 말랑한 과일 젤리가 더 좋은 반응을 얻자 젤리로 방향을 틀었죠. 1922년 ‘춤추는 곰(Dancing Bear)’ 젤리를 출시했는데요. 선풍적인 인기에 힘입어 하리보는 1930년대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 1939년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사업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공장은 풍비박산 나고 한스 리겔의 두 아들은 포로로 끌려갔죠. 그러나 리겔의 아내 게르트루드의 노력으로 간신히 사업을 유지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해인 1945년 창립자 한스 리겔이 사망했지만, 끌려갔던 두 아들이 돌아와 사업을 되살렸죠.
- 아들들은 1960년 아버지의 ‘춤추는 곰’을 이은 ‘골드베렌(Goldbären)’을 출시했습니다. 황금 곰이라는 뜻인데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하리보는 점차 몸집을 불려 나가 유럽 10개국에 공장 16개를 보유한 기업이 됐습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데요. 글로벌 젤리 브랜드 1위에 올라섰죠. 2019년 매출은 3조 6,000억 원으로 추정됩니다.
하리보의 성공 비결은?
하리보가 오랜 기간 사랑받은 것은 특별한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젤리에 집중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죠. 동심을 전한다는 브랜드 메시지도 한결같이 지켜왔습니다.
한 우물만 파기
1920년 창립 이래 젤리만 고수해왔는데요. 광고, 콜라보 역시 한 번 인연을 맺으면 길게 이어갔습니다. 우직하게 한 우물만 파는 모습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죠.
- 하리보는 젤리 외에 다른 사업 분야로 눈을 돌리지 않습니다. 젤리 브랜드로서 한 번쯤 시도해볼 법한 사탕, 초콜릿도 생산하지 않는데요. 대신 1,000여 종에 가까운 젤리를 생산하며 ‘젤리’ 한 우물만 파고 있죠. 에드문트 뮌스터, 둘키아 등 다양한 제과 브랜드를 인수하면서도 브랜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 광고 모델과의 인연도 길게 가져갔습니다. 1991년 독일의 인기 연예인 토마스 고트샬크와 파트너십을 맺었는데요. 고트샬크와 하리보의 동행은 2015년까지 이어졌죠. 한 인물이 같은 상품의 광고에 가장 오랜 기간 출연해 2005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독일의 저가 항공 투이플라이와의 콜라보도 10년을 이어갔는데요. 골드베렌 디자인으로 꾸며진 항공기는 전 세계를 누비며 골드베렌을 알렸죠.
- 꾸준히 한 우물만 파는 모습은 브랜드의 신뢰도를 높였는데요. 실제로 하리보는 유럽인이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 목록에 여러 번 이름을 올렸습니다.
변화와 현지화
젤리에만 집중하는 대신, 매년 신제품을 출시해 시장의 트렌드를 반영합니다. 또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으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는데요.
- 매년 50개의 신제품을 선보입니다. 신제품을 통해 소비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트렌드를 읽는데요. ‘100년 된 젊은 기업’을 추구한다는 관계자의 말처럼, 시장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하죠.
- 전통은 유지하되 생산에는 신기술을 접목합니다. 2018년 본을 떠나 그라프샤프트로 본사와 공장을 이전했는데요. 축구장 38개를 합친 규모로, 매년 젤리 7만 5,000톤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갖췄습니다.
- 철저한 시장 조사를 통해 나라별로 현지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개발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마시멜로가 붙은 젤리, 북유럽에서는 감초 맛 젤리,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는 포도 맛 젤리가 인기입니다. 이슬람, 유대인을 위한 할랄 및 코셔 젤리도 생산하는데요. 그 결과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하며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죠.
100년을 이어온 가치
하리보는 ‘한 봉지의 천진한 행복’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합니다. 특히 광고와 제품에서 브랜드의 메시지가 드러나는데요.
- 1930년대 광고에서 “하리보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줍니다”라는 슬로건이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이후 제품에서 아이들을 세심하게 고려했죠. 브랜드의 아이콘 골드베렌 역시 아이들이 즐겨보는 잡지, 만화책, 서커스 등에서 착안해 탄생했는데요. 봉지 절반이 투명한 패키지는 사탕 가게의 창문을 들여다보는 듯한 설렘을 전하기 위해 디자인됐습니다.
- 1960년대 중반, “하리보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줍니다”라는 슬로건 뒤에 “그리고 어른들도요"가 추가됐습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동심을 전하겠다는 취지였는데요. 102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만큼, 하리보는 어른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브랜드가 됐죠.
- 하리보의 메시지는 최근 광고에서도 나타납니다. 정장을 빼입은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의 목소리로 젤리를 나누어 먹는 광고, 보신 적 있나요? 하리보 젤리를 먹으면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00돌 맞은 골드베렌
1922년 탄생한 브랜드 마스코트 골드베렌은 올해 100살이 됐습니다. 한 세기 동안 변화를 거치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거듭났는데요. 100주년을 맞아 서울에서 전시회도 열립니다.
- 1922년 한스 리겔은 ‘춤추는 곰’을 출시했는데요. 춤추는 곰은 1960년에 ‘골드베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탄생했습니다. 골드베렌이 크게 성공하자 하리보는 공식 출생증명서까지 발급해줬는데요. 1967년에는 독일 특허청에서 공식 등록상표로 인정받았죠.
- 하리보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골드베렌의 젤리 모양, 패키지 디자인 등에 변화를 줬습니다. 1978년에는 달라진 소비자의 미적 감각에 따라 젤리 모양을 바꿨는데요. 다리를 조금 더 오므린 형태가 됐습니다. 1989년에는 과일과 식물의 농축물이 들어가면서 젤리 색상이 옅어졌습니다. 노란색 골드베렌도 처음으로 패키지에 등장했죠.
- 현재 골드베렌은 하리보 전체 상품 중 매출 1위를 차지합니다. 매일 1억 6,000만 개가 생산되는데요. 매년 생산되는 젤리곰을 줄지어 세우면 지구를 열 바퀴 돌 수 있습니다.
-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하리보 골드베렌 100주년 생일 기념전>을 서울 인사동에서 진행합니다. 지난 12일 개최된 이 전시는 하리보에서 여는 최초의 전시회인데요. 하리보의 역사와 생산 과정 등을 다양한 미디어아트로 그려냈습니다. 정글에서 뛰어노는 젤리를 컨셉으로 꾸민 공간도 있는데요.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인공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활기 넘치는 젤리의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합니다.
하리보는 올해 중으로 한국 법인을 설립할 예정인데요. 아시아 국가에 독자적인 법인을 설립하는 것은 최초입니다. 코스타스 블라초스 하리보 해외사업 총괄 책임자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새로운 제품에 대한 저항도가 낮아서 한국을 선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제까지 한국만을 타겟으로 한 상품이나 광고는 없었는데요. 이번 전시를 기점으로 한국 시장에 더욱 집중할 전망입니다. 젤리 외길만 걸어온 하리보가 한국에서 선보일 새로운 모습은 무엇일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