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네일 출처: 위블로)
월드컵 8강전이 치러지며 한참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데요. 선수가 교체될 때 나오는 보드를 보면 강렬하게 존재감을 뽐내는 로고가 있습니다. 바로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 ‘위블로(Hublot)’죠. 위블로는 2010년부터 월드컵 공식 타임키퍼를 맡아왔는데요.
롤렉스·블랑팡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럭셔리 시계 브랜드와 달리 위블로의 역사는 짧습니다. 40년 남짓임죠. 이토록 짧은 시간에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융합'이라는 브랜드 컨셉을 일관적으로 내세웠기 때문인데요.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단숨에 하이엔드 브랜드로 올라선 명품 시계의 이단아, 위블로에 대해서 같이 알아볼까요?
단기간에 명품 브랜드로
위블로의 역사는 1980년에 시작됩니다. 초기에는 유럽의 로열패밀리에게 인기를 얻으며 성장했는데요. 장 클로드 비버 CEO가 이끌기 시작하면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했습니다. LVMH로 인수된 이후에는 활발한 스포츠 마케팅과 함께 기술력을 보완했죠.
- 1980년 이탈리아의 시계 장인 카를로 크로코(Carlo Crocco)는 스위스로 터전을 옮겨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배의 동그란 창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에서 따와 ‘위블로’라는 이름을 붙였는데요. 최초로 금속과 고무 소재를 결합한 시계를 내놓아 주목받았습니다. 편안하고 간결한 디자인의 시계는 럭셔리 스포츠 시계라는 새로운 틈새시장을 공략해 유럽 귀족사회에서 인기를 끌었죠. 스페인 국왕이 그리스 국왕에게 선물하고 스웨덴 국왕은 노벨상 시상에서 착용해 ‘왕들의 시계’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 위블로는 2004년 장 클로드 비버(Jean Claude Viver)가 CEO로 취임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는데요. 비버는 블랑팡, 오메가 등의 브랜드를 세계적인 입지에 올려놓은 시계 마케팅의 천재입니다. 위블로의 브랜드 컨셉을 ‘퓨전’으로 내세우고 이를 담아낸 컬렉션 ‘빅뱅’을 탄생시켰죠. 그 결과 2004년 약 2,600만 달러였던 매출은 2008년 약 3억 달러로 늘어났습니다.
- ‘빅뱅’ 컬렉션의 성공 이후 점차 다른 컬렉션도 선보이며 위블로의 라인업은 늘어났는데요. ‘클래식 퓨전’, ‘스피릿 오브 빅뱅’이 런칭돼 위블로의 대표 컬렉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200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포츠 마케팅에 시동을 도전합니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파트너사로 참여한 건데요. 2010년에는 FIFA와 포뮬러1(F1)의 공식 후원사로 선정되는 등 다른 명품 시계 브랜드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대중적인 스포츠로 브랜드를 알렸죠.
- 성장을 거듭하던 위블로는 2008년, 프랑스 럭셔리 그룹인 LVMH에 인수됐습니다. LVMH의 탄탄한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에 날개를 달았죠. 이어 유명한 무브먼트 제조사였던 BNB가 파산하자 BNB의 고급 인력을 흡수했는데요. 그리하여 2010년 최초의 자체 무브먼트(시계 구동장치)인 ‘유니코’도 공개할 수 있었습니다.
‘빅뱅’을 일으킨 CEO
장 클로드 비버는 2004년부터 위블로를 이끌었습니다. 당시 위블로는 자선 사업에 집중한 창립자 크로코로 인해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었는데요. 비버가 제시한 혁신은 브랜드를 위기에서 구하고 브랜드의 정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원래 크로코는 브랜드의 컨셉으로 고무 소재를 내세우려 했습니다. 그러나 비버는 고무 소재 자체에 집중하지 않았죠. 금속에 고무를 더한 ‘융합’이야말로 위블로가 내세워야 하는 메시지라 생각했습니다.
- 비버는 상류층 위주 마케팅에서 벗어나 럭셔리 시계 시장이 주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을 발굴했는데요. 바로 축구, 농구 등 대중적인 스포츠입니다. 비버는 당장 위블로를 살 수 있는 고객보다 살 수 없는 사람, 즉 미래의 고객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밝혀왔는데요. 어린이와 젊은 학생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월드컵 등의 파트너십을 진행해 온 거죠.
- 공급량을 제한해 제품의 가치를 높인 것도 비버의 전략이었습니다. 이 전략으로 위블로는 글로벌 금융 위기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았는데요. 워낙 공급량이 적었기 때문에 소매업체들이 주문을 줄이거나 가격을 낮추지 않았기 때문이죠.
퓨전 아트(Art of Fusion)
‘퓨전 아트’로 대표되는 융합, 역발상은 비버로부터 시작돼 위블로의 철학이 됐습니다. 융합은 제품의 소재·디자인·마케팅를 관통하는 일관적 컨셉인데요. 위블로가 혁신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이유로 꼽힙니.
소재
위블로는 고무와 금 소재의 결합이라는 파격적인 행보와 함께 출발했습니다. 이후에도 꾸준히 새로운 소재에 도전하며 스위스의 명품 시계 제조 전통에 신선함을 더했죠.
- 고무, 세라믹, 콘크리트, 티타늄 등 하이엔드 시계에는 잘 쓰이지 않던 소재를 과감하게 활용합니다. 이들은 가공이 어려운 소재기도 한데요. 예를 들어 도자기를 뜻하는 세라믹은 가볍고 전기가 통하지 않아서 가공하기 까다롭죠. 이에 위블로는 뛰어난 세라믹 가공 기술을 가진 한국 기술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시계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 특별한 소재의 개발에도 힘을 쏟는데요. 위블로의 공장에는 신소재를 개발하는 야금술 부서가 따로 마련돼있죠. 2012년 금과 세라믹을 결합한 매직 골드(Magic gold)를 개발해 금의 무른 속성을 극복했습니다. 탄소섬유와 알루미늄 코팅을 결합한 텍사리움, 짙은 붉은 빛의 킹 골드도 위블로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소재죠.
디자인
위블로만의 시그니처 디자인은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자산입니다. ‘빅뱅’ 컬렉션 이후로 대범한 디자인을 선보이며 정체성은 더 확고해졌죠.
- ‘위블로’가 의미하는 배의 둥근 창문은 위블로의 시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둥근 베젤(테두리)인데요. 시계 테두리에 박힌 6개의 나사도 위블로의 시그니처입니다. 나사의 모양도 위블로의 첫 글자 ‘H’를 딴 모양으로 특징적입니다.
- 원래 위블로는 미니멀한 디자인을 추구했지만, ‘빅뱅’ 컬렉션 이후 크고 역동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크고 강인한 디자인으로 바뀐 시계 디자인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었죠. ‘빅뱅’ 컬렉션은 출시된 해인 2005년 제네바 시계 그랑프리에서 ‘올해의 디자인상’을 받으며 디자인의 우수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마케팅
위블로의 마케팅은 럭셔리 시계 브랜드로서는 파격적입니다. 대중적인 스포츠를 후원하고 다양한 콜라보를 진행해왔는데요. 온라인 마케팅에도 적극적이죠.
- 명품 시계 브랜드들은 흔히 요트, 승마 등 고급 스포츠를 후원해왔습니다. 그런데 위블로는 럭셔리 브랜드 최초로 축구 경기 후원을 시작했는데요. 2006년 UEFA와의 파트너십을 시작으로, 2010년 FIFA와 인연을 맺어 남아공 월드컵부터 공식 타임키퍼로 활동해왔습니다. 유벤투스 FC와 같은 빅클럽, 킬리앙 음바페 등 선수와도 손을 잡았죠. 나아가 F1, 미국 프로농구팀, 올림픽 선수들까지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전례 없는 스포츠 마케팅을 진행해왔는데요. 역동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얻은 비결입니다.
- 스포츠 외에 다양한 브랜드 및 셀러브리티와도 콜라보를 활발히 시도했는데요. 그중에서도 2013년 페라리와의 협업으로 출시한 ‘라페라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죠. 페라리의 차체를 나타낸 독특한 외관과 자동차 엔진 같은 무브먼트가 화제였습니다. 또 완전히 태엽을 감은 후에 시계를 방치했을 때 시계가 멈추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파워리저브라고 일컫는데요. 50일간의 파워리저브로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 명품 시계 브랜드들은 소수의 자본가와 오프라인으로 모임을 가져 홍보와 판매를 진행하는 마케팅 방법을 주로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나 위블로는 2005년부터 온라인 화상회의로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행사를 진행하는 등 온라인 마케팅을 시도했죠.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공식 계정을 통해 SNS 마케팅에도 적극적인 모습입니다.
위블로를 둘러싼 잡음
하지만, 단기간에 성장한 브랜드인 만큼, 여러 논란과 비판으로 성장통을 앓기도 했는데요. 위블로는 자체 무브먼트의 부재, 가품의 확산과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 자체 무브먼트의 유무는 명품 시계 브랜드를 평가하는 기준입니다. 다만 위블로는 럭셔리 브랜드를 지향하면서도 다른 기업에서 만든 범용 무브먼트를 사용해 비판받았죠. 결국 2008년부터 무브먼트 개발에 착수했는데요. 무브먼트 제조사 BNB의 고급 인력을 흡수해서 2010년 최초의 자체 무브먼트인 유니코를 공개했습니다. 이후 MP-11 등 다양한 무브먼트를 개발해왔죠.
- 명품의 숙명, 짝퉁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기도 했습니다. 특히 ‘빅뱅’ 컬렉션은 그 인기만큼 정교한 중국산 짝퉁이 늘어나 문제였는데요. 이에 2009년 시계 브랜드로서는 최초로 전자 보증 제도를 시도했습니다. 2020년에는 알고리즘 기술을 통해 사진만 찍으면 진품 여부를 알 수 있는 ‘위블로 전자 보증(Hublot e-warranty)’을 도입했죠.
- 자극적인 광고로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F1 회장 버니 에클레스톤이 위블로 시계를 강도당한 후 얼굴이 멍든 사진을 그대로 광고에 게재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위블로를 갖기 위해 한 짓을 보라(See what people will do for a Hublot)’라는 문구도 함께 적혀있었는데요. 비버는 에클레스톤이 먼저 제안한 아이디어였으며, 폭력에 대한 항의의 메시지였다고 밝혔죠.
2006년 출시한 ‘빅뱅 올블랙’은 시계의 표면이 모두 검은색으로 디자인돼 바늘조차 잘 보이지 않았죠. 한 기자가 시계로서 무슨 소용이 있냐고 물었는데요. 이에 비버 CEO는 이제 누가 손목시계로 시간을 보냐고 답했습니다. 시간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손목시계를 차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꿰뚫은 거죠. 이처럼 위블로는 퓨전을 통해 럭셔리 시계의 새로운 방향 보여주면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브랜드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제품의 내구성은 아직도 지적되지만, 디자인과 마케팅이 이를 상쇄하고 있는 거죠. 명품 시계의 이단아, 위블로가 앞으로 시장에 또 어떤 화제를 몰고 올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