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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보편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은 스니커즈. 스니커즈 문화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인물은 패션 디자이너도, 모델도, 연예인도 아닙니다. NBA의 전설, 농구 그 자체로 불리는 마이클 조던인데요. 나이키와 조던의 계약으로 탄생한 ‘에어 조던' 시리즈는 나이키의 자회사 ‘조던 브랜드’로 독립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성장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2003년 농구계를 완전히 떠났는데요. 여전히 조던 브랜드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습니다. 2019년 ‘조던 브랜드'의 매출은 10억 달러를 돌파했죠. 조던이 여전히 날아오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브랜드의 역사와 지금의 브랜딩 전략까지 모두 정리해봤습니다.
나이키 ‘에어’와 루키 ‘조던’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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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브랜드의 시작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나이키는 에어로빅 열풍의 수혜를 입은 리복에 밀리고 있었는데요. 위기의 상황에서 나이키를 건져 줄 ‘승리의 아이콘'이 절실했죠. 이때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유망주, 마이클 조던이 혜성처럼 나타났습니다.
- 나이키는 1984년 NBA 신인이었던 마이클 조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조던을 위한 시그니처 운동화 ‘에어 조던 1’을 출시했는데요. 나이키가 가진 에어 쿠션 기술과 조던의 이름을 합친 네이밍이었습니다. 엄청난 체공력으로 조던에게 붙여진 ‘에어'라는 별명과도 연결됐죠.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그 해에만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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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 조던의 첫 광고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요. ‘누가 인간은 날 수 없다고 했는가?(Who Said Man Was Not Meant To Fly)’라는 문구는 아직도 회자되죠. 마침 텔레비전이 발달하기 시작해 조던의 광고는 미국 전역에 송출됐는데요. 선수 마이클 조던과 에어 조던 모두를 각인했습니다.
- 조던은 곧 폭발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며 NBA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했죠. 조던의 인기에 힘입어 매년 출시된 에어 조던 시리즈의 매출도 상승 곡선을 그렸습니다. 나이키는 리복을 제치고 다시 업계 1위를 차지했죠. 결국 1997년에 ‘조던 브랜드'라는 자회사가 설립됐고 은퇴한 조던이 대표로서 브랜드를 이끌고 있습니다.
인간, 그리고 브랜드 조던
마이클 조던은 그야말로 브랜드 조던의 아이덴티티인데요. 조던의 브랜딩은 곧 마이클 조던의 퍼스널 브랜딩이었죠. 조던, 에이전트, 그리고 나이키는 확고한 원칙을 세워 조던을 브랜딩했는데요. 뛰어난 경기력에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이 더해져 조던은 당시 만인의 롤모델로 거듭났습니다.
- 조던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선수였습니다. 식중독 증세로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도 38득점을 올린 경기 ‘플루 게임(flu game)’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뜨거운 열정으로 신들린 플레이를 선보였습니다. NBA 우승 6회, 파이널 MVP 6회, 정규시즌 MVP 5회, 득점왕 10회 등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남겼죠. ‘에어 조던을 신은 채’ 신화를 써 내려간 조던의 모습은 그 신발을 신으면 조던처럼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심어줬습니다.
- 에이전트와 나이키는 조던이 모범적인 이미지로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공식 석상에서 절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요. 팬들에게 항상 친절했고 깔끔한 정장 차림을 고수했죠. 인종차별, 정치 이슈 등 논란이 될 만한 일에는 말을 아꼈습니다. 구설에 오르지 않는 모범적인 스타의 모습을 보여주며 브랜드 가치를 올렸죠.
- 조던은 나이키 외에도 코카콜라, 맥도널드, 게토레이 등 여러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했습니다. 다만 조던의 완벽한 이미지에 타격을 주지 않는 브랜드와만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예를 들어 콩과 돼지고기가 들어간 통조림 ‘Beanee Weenee’는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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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황제’가 떠난 후
조던은 총 3번의 은퇴를 발표했는데요. 그때마다 나이키의 주가도 휘청였습니다. ‘농구 황제’ 조던이 떠나면 조던 브랜드도 추락할 것이라는 예상이었죠. 그러나 브랜드 조던은 브랜딩 전략을 재조정하며 계속 날아오를 준비를 했습니다.
- 운동화 외에도 가방, 모자 등 상품의 종류를 다양화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의류 브랜드로 리포지셔닝이죠. 마이클 조던의 빈자리는 다른 농구 스타들이 채웠습니다. 이후에는 농구 선수가 아닌 스타들까지 영입했죠.
- 조던은 매년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지만, 과거에 출시된 제품이 프리미엄이 붙은 채 리셀(재판매)되는 현상을 인지했습니다. 이에 OG(original) 라인을 추가해 마이클 조던의 전성기에 출시된 제품을 다시 출시했는데요. 기능은 보완하되 ‘그 시절' 디자인을 재현해 향수를 불러일으켰죠. 더불어 공급량을 줄여 ‘완판'을 의도했는데요. 리셀 문화에 불을 붙인 전략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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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까지 ‘조던 마니아'
조던 브랜드가 아직 건재한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새로운 소비자층을 확보했기 때문인데요. 농구 황제의 활약상을 접하지 못한 세대에게도 다양한 방식을 통해 어필했죠.
-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지도 있는 스타들과 적극적인 콜라보를 진행했습니다. 버질 아블로, 트래비스 스콧과의 협업이 이슈였는데요. 한국에서는 지드래곤과의 협업으로 ‘지드래곤 신발'이라 불리며 인지도가 상승했습니다.
- 기업과도 다양한 콜라보를 진행했는데요. 에픽게임즈의 게임 포트나이트와 협업해 게임 내에 에어 조던 아이템이 등장했습니다. 명품 브랜드 디올과도 콜라보를 진행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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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극적인 래플 마케팅도 눈에 띕니다. 추첨을 진행해 당첨자만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방식인데요. 나이키는 2019년부터 한정판 스니커즈를 래플 방식으로 판매했죠. 약 500만 명 이상이 디올과의 협업으로 출시한 ‘에어조던 1 하이 OG 디올 리미티드 에디션' 래플에 응모했습니다. 조던 역시 래플로 화제 몰이를 하며 상품 가치를 부각하고 경험 소비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를 저격했죠. 해당 제품의 정가는 약 300만 원이었지만 리셀가는 1,500~2,000만 원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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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가 공개됐습니다. 마이클 조던의 일대기와 시카고 불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다뤘는데요. 미국 스포츠 채널 ESPN에서 방영하자 회당 평균 시청자 수 56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국내 넷플릭스에서도 시청 순위 4위를 달성했죠. 젊은 세대에게 조던은 그동안 패션 브랜드로만 알려졌는데요. 다큐멘터리를 통해 ‘농구 황제’ 조던이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자연스레 브랜드에 관한 관심도 커졌죠.
NBA는 2021-2022 시즌 초반에 출범 75주년을 맞아 위대한 선수 75인을 발표했는데요. ESPN은 이 75인 중에서도 마이클 조던을 1위로 꼽았습니다. 조던은 인종차별 근절을 위해 앞으로 10년간 1억 달러를 기부한다고 발표해 스포츠 스타로서 역대 최대 기부 규모를 달성하기도 했습니다.
조던은 여전히 명실상부 미국 최고의 스타 중 하나입니다. ‘Greatest Of All Time’, 그를 상징하는 수식어죠. 현역 시절 보여준 끈질긴 승부욕을 보여주듯, 브랜드 조던의 영향력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고의 스타가 은퇴한 후에도 트렌디한 이미지를 놓치지 않았죠.
다만, 과도한 리셀 현상을 부추긴다는 비판은 피해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나이키가 발표한 리셀 금지 조항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죠. 브랜드를 관통하는 ‘조던’의 철학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