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전히 컨버스에 끌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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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전히 컨버스에 끌리는 이유

요즘 거리에 나가면 컨버스 신발 한 켤레는 거의 무조건 눈에 들어옵니다. 청바지에 휘뚜루마뚜루 가볍게 신기 적격인 신발이죠. 그런데 이 브랜드가 창립 100주년을 훌쩍 넘겼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중간에는 한 차례 파산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지금 컨버스는 건재합니다. 한정판 발매를 손꼽아 기다리는 마니아도 많죠.

Converse

컨버스는 트렌드의 첨단에서 여전히 젊음과 자유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데요. 이번 <브랜드 한입>에서는 치열하게 변화하는 패션업계에서 컨버스가 펼쳐온 브랜딩 전략을 소개하겠습니다.


100년 전 컨버스는?

컨버스의 초기 농구화 논 스키드 ⓒ American Federation of Arts

컨버스는 1908년 미국에서 실용적인 신발 브랜드로 출범했는데요. 잘 미끄러지지 않는 고무 밑창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컨버스는 1915년 테니스화의 성공에 이어 1917년 농구화 ‘논 스키드’(Non-Skid)를 출시해 대성공을 거둡니다.

  • 당대의 인기 농구 선수 ‘척 테일러’가 논 스키드를 착용한 후 컨버스는 명성을 얻습니다. 컨버스가 이 선수를 정식으로 후원하면서 논 스키드는 우리도 잘 아는 이름, ‘척 테일러 올스타’(Chuck Taylor All Star)를 새롭게 받죠.
  • 발목을 감싸 보호하는 디자인과 튼튼한 기능성 밑창 때문에 컨버스는 농구 선수들에게 스포츠웨어로 사랑받았는데요. 척 테일러가 아예 컨버스의 홍보 대사를 맡아 미국 전역의 농구팀을 지원하고 컨버스를 영업했죠. 농구의 인기가 올라가는 만큼 컨버스도 인기도 하늘을 찔렀습니다.
  • 컨버스는 코트 밖에서 패션 아이템으로도 성공을 거둡니다. 1957년 출시된 로우탑 버전은 기존보다 신고 벗기 편해 대중의 인기를 끌었는데요. 1971년 농구팀별 유니폼 색상에 맞추기 위해 만든 다양한 컬러 라인업은 젊은이들의 자기표현 수단이 됐죠. 비틀스, 제임스 딘 등이 착용한 후 ‘청춘’다운 이미지는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컨버스의 몰락

이렇게 잘 나가던 컨버스의 부진은 ‘뻣뻣함’에서 비롯했습니다. 1970년대를 지나면서 농구 코트 안팎의 변화는 빨라졌는데 컨버스는 원래 하던 일만 고집한 것이죠.

  • 1970년대 후반 컨버스는 농구 코트에서 점점 외면받기 시작했습니다.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후발 주자가 고성능 농구화로 스포츠웨어 시장을 집어삼켰기 때문이죠. 이들이 신제품을 개발하고 농구 선수와 스폰서쉽을 맺어 홍보에 열을 올리는 동안 컨버스는 손을 놓고 있었습니다.
  • 코트 밖에서는 그런대로 명맥을 이어갔지만 급격한 매출 추락을 막지는 못했는데요. 1990년대까지도 커트 코베인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컨버스를 제법 애용했습니다. 하지만 리복과 아디다스 등이 착용감과 스타일을 모두 갖춘 제품으로 대중적인 포지션마저도 위협하기 시작했죠. 2000년 3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2%가량 폭락한 것은 컨버스의 수난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 결국 2001년 컨버스는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파산했습니다. 북미 공장을 폐쇄하고 본사 건물 및 라이선스 매각으로 간신히 부채를 줄여나갔죠. 다행히 2년 후, 나이키가 컨버스를 인수합니다.
1998년 스프리스의 컨버스 광고 ⓒ 광고정보센터

미국 컨버스의 파산은 국내 컨버스 영업에도 영향을 미쳤는데요.

  • 금강제화의 스포츠용품 전문 브랜드 스프리스는 1996년 독점 라이선스를 구매하는 형식으로 컨버스를 국내에 들여왔습니다. 컨버스가 캔버스화 열풍을 일으키면서 스프리스는 2004년 9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등 성공을 거뒀죠.
  • 하지만, 2004년 대규모의 적자로 돈이 궁해진 컨버스 본사가 라이선스 비용 500% 인상을 요구한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스프리스는 당연히 거부했는데요. EXR이 2005년 다시 라이선스를 들여왔을 때 컨버스는 국내에서 한물 간 이미지가 됐습니다. 짝퉁도 판치고 있었죠.

팬덤이 열광하고 대중까지 사로잡은

망해 버린 컨버스를 살리기 위해 나이키는 컨버스의 리브랜딩을 진행합니다. 기존 강점을 극대화함으로써 모호해진 브랜드 가치를 분명하게 재구성했는데요. 그 결과 다시 컨버스의 팬덤을 구축하고 대중에게까지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 헤리티지
  • 컨버스는 브랜드를 완전히 갈아엎는 대신 기존의 헤리티지를 계승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원래 컨버스는 1970년대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펑크나 메탈 같은 하위 문화와 관계를 맺었습니다. 평화를 억압하는 세계로부터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히피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었죠.
  • 새로워진 컨버스는 이 ‘자유로움’을 극대화해서 전달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주류 문화 따위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나다움'을 쫓을 수 있도록 돕겠다고 나섰죠.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도 콘셉트와 어울렸습니다.
  • 컨버스의 주요 디자인 요소(고무 밑창, 캔버스 천, 별이 그려진 패치 등)도 유지했습니다. 재정적으로는 궁지에 몰렸지만 대중에게 아이코닉한 디자인과 클래식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에는 분명히 성공했습니다. 어중간한 개선으로 ‘순수함’을 해치느니 스테디셀러의 가치를 지키기로 한 것이죠.
  • 대신 제품 내적으로는 변화를 꾀했습니다. 기존 디자인을 살리면서도 나이키의 쿠셔닝 시스템을 적용한 신제품을 출시하는 식인데요. '컨버스 리뉴'(Converse Renew)는 클래식한 스타일과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한 재료를 강조하고 있죠. 컨버스의 오리지널리티를 원하는 이들에게도, 실속 있는 신발을 원하는 이들에게도 어필하는 셈입니다.
2022년 컨버스 X CDG Play ⓒ Converse
매력적인 콜라보레이션
  • 컨버스는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콜라보레이션으로 자신들이 추구하는 자유로움을 드러냈습니다. 동시대의 청년이 호응할 만한 협업 상대를 유연하게 찾아냈죠. 스포츠웨어로 시작했으나 예술가들에게도 폭넓게 사랑받았던 브랜드 경험이 이를 뒷받침했는데요.
  • 패션 외 영역과의 콜라보레이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앤디 워홀, DC 코믹스와 심슨, 닌텐도와 헬로키티…….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전방위로 찔러 보면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한 것이죠. 2018년에는 라인프렌즈와 방탄소년단의 합작 캐릭터 BT21로 만든 척 테일러 올스타 한정판이 온라인 런칭 10분 만에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 오프 화이트나 메종 마르지엘라 같은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와의 콜라보레이션도 유명합니다. 꼼 데 가르송의 시그니처 하트가 옆면에 박힌 척 테일러는 지금도 컨버스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는데요. 2009년 꼼 데 가르송과 처음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이후 10년 이상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컨버스의 대표적인 협업 성공 사례가 됐습니다.

 

컨버스 = 나다움
다양한 패치워크로 커스터마이징한 컨버스 ⓒ Converse
  • 다양한 컬러와 시즌마다 쏟아지는 콜라보레이션 덕분에 소비자는 ‘나다운’ 컨버스를 골라잡을 수 있습니다. 컨버스가 다시 소위 ‘먹히는’ 브랜드가 되면서 기본 디자인마저 더욱 빛을 발하게 됐죠. 발끝까지 눈에 띄기를 원하는 이들부터 일상적인 신발을 원하는 사람들까지 거리낌 없이 컨버스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 컨버스는 아예 신발 커스터마이징 서비스 ‘컨버스 바이 유’(Converse By You)로 판을 깔아주고 있는데요. 저마다 다른 삶에서 영감을 받은 컨버스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컨버스 홍대 스토어에서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레이저 프린팅과 자수, 각인과 패치가 제공되죠.
  • 컨버스를 통한 자기표현은 가치관의 영역으로도 뻗어나갑니다. 컨버스는 2015년 이후 매년 6월 성소수자의 달을 기념하는 프라이드 컬렉션을 출시하는데요.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과 마찬가지로 무지개를 활용한 디자인을 내놓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는 2월에도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을 맞아 BHM 컬렉션을 출시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전통 텍스타일을 오마주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죠.
  • 이 같은 행보는 컨버스가 동시대의 사람들과 발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텍사스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이 초록색 하이탑 컨버스를 신고 있었음이 밝혀진 후 같은 색의 컨버스 구매 물결이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컨버스도 여기 부응해 수익금 25만달러를 관련 기금에 기부했습니다. 컨버스를 소비하는 일에 가치가 담기도록 노력하고 있는 셈이죠.

 

지금 우리 곁의 컨버스

피지랭(pgLang)과 협업한 척 하이 70 ⓒ Converse
  • 컨버스의 콜라보레이션은 2022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CDG Play나 스투시와 협업한 제품이 출시됐었는데요. 지난 5월 2일 켄드릭 라마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피지랭과 콜라보레이션한 ‘피지랭 포 컨버스’(pgLang for Converse)는 출시 직후 매진됐습니다. 홍보를 위한 뮤직 비디오도 제작했죠.
  • 다양한 마케팅 캠페인도 눈에 띄는데요. 지난 3월에는 컨버스의 인기 제품으로 구성된 일종의 가상 옷장을 미국의 인기 SNS 스냅챗과 협력해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Bitmoji 캐릭터에게 척 테일러 올스타를 신기는 것이죠. 컨버스는 'Lugged 2.0' 모델을 이 컬렉션에서 먼저 공개한 후 실물 제품을 런칭해서 Z세대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 한국에서도 컨버스는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컨버스 코리아는 나이키 글로벌이 직접 운영 중인데요. 2018년부터 4년 연속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년 매출은 858억원에 달하죠. 국내 매출 1위 슈즈 멀티샵으로 꼽히는 ABC마트에서도 개별 제품 판매량 1위로 척 테일러 올스타 코어가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당장 10년 후를 내다보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한 브랜드가 100년을 생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매 시즌마다 트렌드가 바뀌는 패션업계라면 더더욱 어렵고요. 컨버스는 한 번 감을 잃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100년을 넘어 지금까지 대중과 호흡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잘하는 일에 집중하되, 거기 안주하지 않고 소비자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죠.

Z세대가 소비 권력으로 부상하면서 위기를 겪는 기성 브랜드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요. 컨버스는 브랜드의 역사를 무작정 부정하는 것이 정답은 아님을 증명합니다. 과거의 유산을 지금도 먹히는 가치로 재빨리 전환하기. 우리가 여전히 컨버스를 신고 싶은 이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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