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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0일, 대치동 한복판 은마사거리에, 주황색 간판에 검은색 로고를 달고 No Brand Pizza(이하 노브랜드피자) 1호점이 오픈했습니다. 노브랜드피자는 짠맛이 강조된 미국식 피자를 표방하며 이를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이른바 중저가 피자 시장으로의 진입을 시도 중인데요. 피자스쿨, 피자마루, 고피자와 같은 기성 강자들이 버티고 있는 와중에 더본코리아의 ‘빽보이피자’나 신세계푸드의 노브랜드피자와 같은 신생 브랜드까지 중저가 피자 시장 진입을 선언하면서 피자 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오픈한지 2주가 조금 넘은 이 브랜드가 분석할 게 뭐가 있다고 오늘 <브랜드 한 입>에서 노브랜드피자를 선정했을까요? 사실 노브랜드피자 1호점이 들어서기 이전, 해당 위치에는 원래 No Brand Burger(이하 노브랜드버거) 매장이 있었습니다. 노브랜드버거 또한 신세계푸드 계열의 브랜드로써, 가성비 버거를 앞세우고 있는데요. 2019년 8월에 처음 등장한 노브랜드버거는 현재 17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며 계속 상승 곡선을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면 노브랜드피자와 노브랜드버거에 모두 들어있는 이 ‘노브랜드’라는 단어가 상당히 모순적이지 않나요? 엄연히 하나의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브랜드가 아니라고 이름에서부터 부정하고 있는 셈인데요. 지난 2015년, 이마트가 ‘No Brand(이하 노브랜드)’를 처음 런칭했을 때에도, 대중은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문에 대해 타당한 답을 내놓으며 노브랜드 측은 2020년에 연 매출 1조 이상을 기록하고 최초로 흑자를 달성 하는 등 순항하고 있는데요. 오늘 <브랜드 한 입>에서는 노브랜드의 탄생부터 성장, 그리고 ‘노브랜드’가 어떻게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 No Brand
이마트, PB(PL)에서 활로를 모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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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중반, 사업 환경 변화로 인해 이마트를 비롯한 대형 유통업체들은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2012년부터 3년간 대형 할인마트들은 역성장을 이어가기도 했는데요. 이에 이마트는 새로운 성장 동력 확보의 일환으로 PL* 개발에 힘써왔습니다.
*PL(Private Label): 유통업체(플랫폼)에서 직접 제작한 자체 브랜드 상품을 의미하는 PB(Private-Brand)와 거의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다만, 이마트 측에서는 자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브랜드를 지칭함에 있어 PB보다 PL이라는 단어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마트는 2013년에 ‘피코크’라는 PL을 출시합니다. 피코크는 가격보다는 품질에 더 방점을 둔 PL인데요. 일례로 피코크 제품 중 하나인 초마짬뽕 한 봉지(2인분)의 소비자 가격은 8,400원입니다. 일반 짬뽕라면이 4인분에 약 5,000~6,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가격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대 유명 맛집인 ‘초마’와 협력해 만들어진 초마짬뽕은 풍부한 맛과 높은 품질을 앞세워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아왔습니다.
이마트의 프리미엄 가정 간편식(HMR) 브랜드인 피코크의 2013년 매출은 340억원이었으며, 지난 2021년에는 연매출 4,000억원을 기록하며 높은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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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품질에 초점을 맞춘 프리미엄 PL 피코크로 성공을 거둔 이후, 이마트는 2015년에 정반대의 전략을 활용해 최저 가격으로 승부하는 ‘노브랜드’를 선보입니다.
No Brand가 지향하는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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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랜드는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최종 소비자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브랜딩 및 마케팅 비용과 같은 부대비용은 모두 제거하고 오직 소비자를 위해 제품의 본질에 집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건데요. 이들의 철학은 이들이 출시하는 제품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2015년 4월, 노브랜드는 최초의 제품 라인업으로써, 건전지, 화장지, 물티슈, 감자칩, 초콜릿 등 9개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이들 모두 간단한 소비재로써 대부분 저관여 제품*이었는데요. 저관여제품의 특성상 브랜드 간 품질 차이는 크지 않으나, 브랜드에 따라 가격대가 다양하게 형성돼 있었습니다. 여기서 노브랜드는 ‘브랜드 값’을 과감하게 쳐내고 마케팅도 최소화하며 가격 경쟁력을 높여 소비자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저관여 제품: 저관여 제품이란 소비자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정보처리 과정이 간단하고 신속하게 이뤄지는 제품들을 의미합니다. 주로 브랜드 간 제품 차이가 크지 않으며 잘못 구매해도 위험이 별로 없는 제품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대표 사례로는 샴푸, 초콜릿, 장갑 등등이 있습니다.
노브랜드 제품의 겉면을 보면 아시겠지만 기존 이마트에서도 사용되던 노란색을 중심으로 심플한 디자인에 제품명과 간단한 설명만이 들어가 있습니다. 상품의 본질이라고 간주되는 요소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배제한 결과물인데요. 갖은 원가 절감 노력 속에 노브랜드는 같은 상품군 대비 최대 67%까지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브랜드가 단순히 ‘저렴한 가격’이라는 요소로만 소비자들에게 다가간 것은 아닙니다. 정용진 부회장은 “저가 PB지만 자부심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라며 노브랜드 제품을 통해 "진정한 스마트 컨슈머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기존에는 소비자들이 ‘저렴하면 싸구려’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면, 노브랜드는 저렴한 가격을 앞세우면서도 동시에 제품의 퀄리티를 포기하지 않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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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저렴한 가격에 이끌려 노브랜드 제품을 구매했던 소비자들은 ‘기대 이상의 품질’에 큰 호응을 보냈는데요. 대중의 입소문과 호평 속에서 노브랜드는 별도의 마케팅 없이도, 소비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확보하는 데 성공해냅니다.
뭐니뭐니해도 No Brand의 핵심은 가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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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노브랜드는 어떻게 가격을 절감할 수 있었을까요? 우선, 노브랜드는 PB입니다. 즉, 유통업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브랜드이기에 제조기업에서 직접 운영하는 제조업자 브랜드(NB)에 비해 홍보비용 및 마케팅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뜻이죠. 이마트 측이 기존에 운영하던 매장들에 노브랜드 제품을 비치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에게 신규 제품을 노출시킬 수 있었던 셈입니다.
이에 더해 사측은 원가를 절감하면서 양질의 제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경쟁력 있는 제조업체로부터 제품을 소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외 기업들로부터 ‘직소싱(direct sourcing)’ 하는 방안도 고사하지 않았는데요. 가령 감자칩의 경우 말레이시아 제과업체인 ‘마미’와 제휴해 대량으로 발주하고 생산규격을 일원화함으로써 가격을 낮출 수 있었습니다.
노브랜드는 디자인 단순화, 브랜딩 비용 절감, 기능 최적화, 단량통일, 판매채널 다양화 등의 방안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No Brand, 브랜드가 되다
대표 ‘가성비’ 제품군이라는 호평과 함께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게 되며 ‘노브랜드’라는 이름은 흥행 보증수표가 되었습니다. 출시 6년이 넘은 현 시점, 노브랜드 제품 수는 1,300개 이상이며 오프라인 전문점은 280여 개에 달합니다. 그리고 이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노브랜드는 서서히, 그러나 본래의 기업 정체성을 침해하지는 않을 정도로 브랜딩을 추가해왔습니다.
No Brand의 본격적 브랜드화, 제품 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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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초창기의 노브랜드 제품군은 포장 겉면에 노란색 단일 색상과 함께 간단한 제품 이미지 및 설명만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추후 출시된 제품에서는 점차 노란색을 줄여가며 2018년 이후에는 노란색이 아예 들어있지 않은 제품들도 여럿 출시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추정해볼 수 있는 건 노브랜드가 더 이상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모든 제품을 노란색으로 뒤덮을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기존에는 제품 포장 지면을 거의 모두 활용해 ‘간결한 디자인과 함께 브랜딩 비용을 최소화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야만 했다면 이제는 종달새 모양의 로고와 ‘No Brand’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No Brand’라는 라벨의 브랜드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노브랜드 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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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측은 PL을 활용해 제품을 유통 및 판매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노브랜드’라는 라벨을 한층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버거 프랜차이즈를 런칭합니다. 지난 2019년 6월, 이마트의 자회사인 신세계푸드는 홍대에 노브랜드버거 1호점을 오픈했는데요. 이후 1년 8개월만에 100호점을 돌파하며 성공적으로 국내 버거 시장에 안착했습니다. 2021년 말까지 전국에 총 170개 점포를 두고 있는데요, 신세계푸드 측은 올해 250개 점포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가성비 버거를 표방하는 노브랜드 버거는 “WHY PAY MORE? IT’S GOOD ENOUGH(왜 더 내? 이걸로 충분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노브랜드부터 이어져 온 아이덴티티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품 가격대 또한 이에 걸맞게 형성돼 있는데요. 버거 단품 가격은 2200~5300원, 세트가격도 3900~6900원으로 경쟁사 대비 약 20% 저렴한 가격대를 보이고 있습니다.
노브랜드 버거는 어떻게 가격을 이렇게 낮출 수 있었을까요? 우선 노브랜드 버거는 이마트라는 유통 강자를 모기업으로 두고 있다는 점을 활용했습니다. 이들은 전문성을 보유한 공장에 일부 제조 공정을 맡기고 있는데요. 가령 노브랜드 버거에 활용되는 야채는 신세계푸드 이천공장에서 제조ㆍ관리ㆍ가공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패티와 같이 소비자 만족도를 크게 좌우하는 지점에서는 원가를 줄이지 않은 대신, 햄버거 빵과 같이 소비자 만족도가 크지 않은 부분에서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노브랜드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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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브랜드라는 라벨을 활용해 성공적으로 버거 프랜차이즈를 선보인 이마트 측은 이제 노브랜드피자를 통해 이 흥행공식을 다시금 증명하고자 합니다.
노브랜드피자도 노브랜드버거에서 활용된 “WHY PAY MORE? IT’S GOOD ENOUGH”라는 슬로건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앞서 사용된 전략과 동일하게 타사 동일 제품 대비 20%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고 있는데요. 노브랜드버거의 런칭 때와는 다른 점 2가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선 노브랜드피자는 기존에 노브랜드와 노브랜드버거가 모두 사용한 노란색 대신 주황색을 시그니쳐 컬러로 활용했습니다. 또한 이들은 비버의 형상을 하고 있는 ‘피버’라는 이름의 마스코트를 함께 출시했는데요. 이 두 가지 요소들은 노브랜드피자가 기존의 노브랜드와는 다소 다른 노선을 택할 것임을 시사합니다. 특히 마스코트를 선정했다는 점은 ‘브랜딩을 최소화한다’라는 노브랜드의 전략을 일부 내려놓았다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직 런칭한 지 2주밖에 안 된 노브랜드피자이지만 지역 상권을 해친다는 지적과 더불어 횡단보도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고피자’ 브랜드와 너무 유사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외적인 요소를 차치하고도 노브랜드피자는 노브랜드라는 이름을 내걸고 브랜딩을 전면적으로 진행한다는 일종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 또한 하나의 과제일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노브랜드피자 자체는 이제 막 발을 내딛은 신사업이긴 하지만, 이로 인해 노브랜드가 지난 7년간 쌓아 올린 이미지에 타격이 갈 수도 있기에, 차후 노브랜드피자가 어떤 행보를 취할 지에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