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은 간밤에 푹 주무셨나요? 소위 ‘꿀잠’을 위해서는 자는 시간이나 환경 등도 중요하지만 ‘어디에서 자느냐’도 큰 비중을 차지하죠. 오늘 <브랜드 한 입>에서는 '프리미엄 수면 브랜드' 시몬스의 브랜딩 전략 변화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침대 브랜드로 유명한 시몬스는 지난 2월 청담동에 팝업스토어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를 오픈했습니다. 침대 회사가 뜬금없이 식료품 팝업스토어를 연 것인데요. 실제로 해당 팝업스토어에서 침대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대신 이들은 부산의 유명 수제버거 브랜드인 ‘버거샵’을 스토어 2층에 입점시켰는데요. 버거샵은 4주 연속 폐점 시간 전에 햄버거가 완판되는 등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시몬스는 급기야 광고 문법에도 변화를 가져왔는데요. 시몬스는 지난 1월에 ‘Oddly Satisfying Video(‘묘하게 만족스러운 비디오’, OSV)’라는 제목으로 소위 ‘멍때리기’ 광고를 업로드합니다. 약 2분가량 지속되는 이 ‘멍때리기’ 영상은 업로드 열흘 만에 1천만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현재는 2천만 조회수를 넘긴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광고에서도 역시 침대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침대 회사인 시몬스는 왜 최근에 침대가 없는 브랜딩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 <브랜드 한 입>에서 그 이유를 알려드립니다.
침대 계의 명품, 시몬스(feat. 한국 시몬스)
1870년 창립된 시몬스는 1876년 스프링 제조 기계 특허권을 기반으로 당시 12달러에 달하던 매트리스 가격을 1달러 아래로 떨어뜨리며 침대 매트리스의 대중화에 기여합니다. 이후 1910년 창업자인 젤몬 시몬스의 뒤를 이어 젤몬 시몬스 2세가 회사를 넘겨받았을 당시, 캐나다에서는 천으로 된 포켓에 코일을 넣고 개별적으로 마감한 포켓 스프링으로 만든 매트리스가 제조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젤몬 시몬스 2세는 직원들로 하여금 포켓스프링을 대중화할 수 있는 수단을 모색할 것을 지시했고, 그 결과 1925년에 세계 최초로 포켓 스프링 제조 기계를 발명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몬스는 지금까지도 생산되고 있는 대표 라인업인 ‘뷰티레스트(Beutyrest)’를 세상에 선보이게 됩니다.
뷰티레스트의 당시 가격은 39.5달러로 당시 시판되던 일반 매트리스의 서너 배에 달했는데요. 그럼에도 프리미엄 제품을 선호하는 고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시몬스는 본격적으로 프리미엄 수면 브랜드로서 행보를 이어가게 됩니다. 이후 1958년에 이들은 세계 최초로 퀸사이즈, 킹사이즈 매트리스를 선보이는 등 연구개발을 계속 이어갑니다.
1992년 시몬스는 독자적인 시몬스 한국 법인을 설립하게 되는데요. 이듬해인 1993년 한국 시몬스로 상표권의 공식 이전이 완료되며, 한국 시몬스는 사실상 미국 시몬스로부터 라이선스만 가져온 별개의 회사로 독립합니다. 시몬스는 1999년에 웨스틴 호텔과 공동으로 개발한 ‘헤븐리 베드(heavenly bed)’를 시작으로 국내 프리미엄 매트리스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했고, 그 결과 현재 안다즈 서울 강남, 신라호텔, 포시즌스호텔 등 국내 특급 호텔의 90%가 시몬스 매트리스를 사용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죠. 이처럼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해온 한국 시몬스는 2007년 자체적인 R&D 센터를 개설해 제품 개발 및 품질 개선 활동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시몬스 브랜딩 전략의 변화
안정호 한국 시몬스 대표는 회사에서 '원가 절감'이란 말을 못 쓰게 한다고 하는데요. "미리 제품 가격을 정해두면 수익성을 위해 저렴한 재료를 쓰게 된다"라면서, 원가는 높더라도 높은 품질로 승부하는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할 의지를 밝힌 바 있죠.
이처럼 시몬스는 제품의 성능과 우수한 기술에 초점을 맞춰 정보 전달식 마케팅을 진행해왔는데요.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성능 광고가 아닌 브랜드 아이덴티티나 라이프스타일 등의 가치를 소구하는 이미지 마케팅을 펼치게 됩니다. 소비자들이 시몬스라는 브랜드를 보고 떠올리는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이죠. 이를 위해 시몬스는 ‘침대 없는 침대 광고’ 제작, 침대 없는 팝업스토어인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및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 런칭 등 MZ 세대가 친숙함을 느낄 만한 브랜딩을 펼치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시몬스는 MZ 세대를 대상으로 이러한 마케팅을 펼치는 걸까요? 먼저, 침대가 대표적인 '고관여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고관여 제품이란 가격이 높고, 한 번 구매하면 오래 사용하는 제품을 가리키는 용어인데요. 고관여 제품의 경우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매하기까지 오랜 탐색 과정을 거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몬스는 추후 자사의 고객이 될 MZ세대에게 시몬스라는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켜, 이들이 미래에 침대를 구매할 때 시몬스 침대를 구매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입니다.
시몬스는 예전부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슬로건을 활용해왔습니다. 과거에는 ‘흔들리지 않는’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 ‘포켓 스프링’을 필두로 시몬스의 뛰어난 기술력, 매트리스의 우월한 성능 등을 강조하는 방식의 마케팅이 이뤄져 왔는데요. 물론 지금도 동일한 슬로건이 활용되고 있긴 하지만, 현재는 마케팅의 내용을 물리적 편안함뿐만이 아닌 정서적 편안함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하는 문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광고와 시몬스가 런칭한 팝업스토어 역시 정서적 편안함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죠.
점점 침대가 없어지는 시몬스의 광고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시몬스침대가 제작한 광고 가운데 가장 유명한 광고를 꼽으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이 광고를 떠올리곤 합니다. 1995년에 방영된 광고로, 볼링공 실험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는데요. 약 2층 정도의 높이에서 시몬스 매트리스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려도 그 위에 세워진 볼링핀이 넘어지지 않는 장면을 연출하며,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이라는 슬로건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광고는 포켓 스프링을 기반으로 시몬스 침대가 지니고 있는 우수한 기술력과 성능을 강조하고 있는 대표적인 성능 광고인데요. 정보 습득이 어려웠던 과거에는 제품의 성능과 품질 정보를 확실히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성능 광고가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대에 제작된 대부분의 시몬스 광고에서 이와 유사하게 성능이 강조되는 연출이 활용됩니다.
성능 대신 '편안함'을 강조하다
하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 습득이 쉬워지고, 성능 광고가 점차 대중에게 호소력을 잃어가자 시몬스는 ‘편안함’이라는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마케팅 전략을 변경하게 됩니다. 이 전략을 가장 잘 보여준 광고가 바로 2018년에 나온 하루 동안 고생한 나를 위하여 라는 광고인데요. 광고는 모델이 침대에 앉아있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후 점차 화면이 줌아웃 되면서 그 주위로 모델이 하루 동안 보냈던 번잡한 일상의 모습이 나타나는데요. 그러다 모델이 침대에 눕는 순간 그 번잡함이 모두 사라지는 연출이 활용됩니다. 그리고 영상 말미에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시몬스 침대라는 나레이션이 등장하죠.
이 광고를 시작으로 시몬스는 본격적으로 ‘숙면’과 ‘편안함’이라는 가치에 방점을 두고 마케팅을 진행합니다. 침대의 기능이나 성능에 대한 설명은 일절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이런 과감한 시도로 해당 광고는 유튜브 조회수 50만회 이상을 기록했는데요. 당시 광고의 기획과 함께 광고음악도 큰 화제가 됐는데요. 광고에는 영국 아티스트 그룹 HONNE의 warm on a cold night이 사용되면서, 광고와 브랜드 이미지에 세련된 느낌을 더해주었죠.
침대가 없어지고 편안함과 느긋함만 남다
그랬던 시몬스가 2019년부터는 아예 광고에서 침대도, 나레이션도 빼버리는 더 과감한 선택을 합니다. 위 광고는 해먹에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시작해, 점차 줌 아웃 되며 시몬스의 타이포그래피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침대의 성능은커녕, 시몬스 침대조차 등장하지 않죠. 대신 해먹에 편안하게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편안함’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강력하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해냅니다.
당시 시몬스는 이러한 느낌의 광고를 총 세 편 제작했는데요. 각각 시작은 해먹, 자동차 보닛 위, 선베드이지만 결국 시몬스의 타이포그래피를 보여주는 것으로 광고가 마무리됩니다. 이 광고는 유튜브에서 현재 각각 4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죠.
시몬스는 2021년에는 하품하는 사람들의 모습, 2022년에는 멍때리기 영상 등의 광고를 제작하며 ‘피로’, ‘숙면’을 넘어서는, ‘편안함’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계속 강조해갔습니다.
침대회사 매장에 침대가 없는 이유는?
B2B에서 D2C로
시몬스는 마케팅 방식 뿐만 아니라, 침대 유통 방식을 변경해 더 큰 효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과거 시몬스는 다른 침대 회사와 동일하게 대리점에 침대를 공급하고 매장 인테리어, 고객 관리 및 판매 등을 대리점주에게 일임하는 B2B(Business-to-Business) 방식으로 유통망을 운영해왔는데요. 작년 9월 29일을 기점으로 시몬스는 자율적인 대리점 체제를 공식적으로 종료했습니다.
사실 시몬스는 이미 훨씬 전부터 ‘시몬스 맨션’이라는 위탁 대리점 방식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왔는데요. 2018년부터 시작된 이 시몬스 맨션 시스템은 시몬스 침대 본사가 임대료, 관리비, 인테리어 비용, 진열 등 매장 운영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전부 지원하는 대신, 맨션 점주가 판매에 대한 수수료를 챙겨가는 방식입니다. 그 결과 시몬스는 2018년 당시 250여 개에 달하던 매장 수를 2021년까지 약 140여 개로 대폭 줄였고, 동시에 매장당 월평균 매출은 오히려 2.3배가량 높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즉, 시몬스 측이 직접 매장의 운영에 관여하며 소비자들과 직접적인 접점(D2C*)이 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을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죠.
*D2C(Direct to Customers)란 자체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유통 방식을 의미합니다.
시몬스 테라스를 필두로 한 '소셜라이징' 전략
시몬스는 인근에 있던 시몬스 공장을 확장 이전하면서 2018년 9월 이천시에 복합문화공간인 시몬스 테라스를 오픈했습니다. 시몬스 테라스는 ‘다양한 경험과 브랜드 취향이 반영된 소셜 스페이스’를 표방했는데요. 매트리스 랩, 호텔, 카페 등의 시설로 구성돼 있어 소비자들이 수면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습니다. 심지어 시몬스 테라스는 이천의 특산물인 쌀을 활용한 디저트 메뉴도 선보였죠.
이들은 이천 지역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특산물을 알리고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농산물 직거래 장터인 ‘파머스 마켓’을 주기적으로 개최해오기도 했습니다. 시몬스의 이러한 노력은 소셜라이징(socializing)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는데요. 시몬스 측은 이에 대해 “주민들과 활발한 소통이 이뤄지고 매출 상승까지 이끌어냈던 경험”이 추후 여타 소셜라이징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밝혔죠.
*소셜라이징 마케팅이란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마케팅 활동을 지칭합니다.
침대도 없앤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와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
시몬스는 이천에서 시몬스 테라스를 통해 소셜라이징 마케팅을 펼친 경험을 바탕으로 추후 한국 각지에서 소셜라이징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2020년 4월에는 철물점을 컨셉으로 한 ‘시몬스 하드웨어 스토어’를 서울 성수에서, 2021년 6월에는 잡화점을 컨셉으로 한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를 부산 해운대에서, 2022년 2월에는 부산에서 런칭했던 ‘시몬스 그로서리 스토어’를 약간의 컨셉 변경과 함께 서울 청담동에서 오픈했습니다.
이들 매장의 공통점은 매장 안에 침대가 없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이들 매장에서는 ‘숙면’이라는 가치가 전면에 드러나지도 않는데요. 이에 대해 시몬스 측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추구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설명합니다.
"저희는 침대 브랜드이기 때문에 좀 무거운 느낌이 있을 수 있잖아요
시몬스라는 브랜드가 작은 일상에서도
많은 사람에게 작게나마 들어가 있기를 바랐어요.
시몬스침대라는 컬쳐 풀 안에서 소비자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호흡하는 과정인 것이고..."
이를 통해 시몬스가 침대라는 객관적인 성능이 아닌, 편안함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MZ세대를 비롯한 대중들에게 접근하고, 시몬스만의 팬덤을 구축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사람들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 뇌리에 시몬스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킨다는 목표가 숨겨져 있는 것이죠.
시몬스 제품의 성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수십년간 소비자들에게 알려져 왔습니다. 그리고 동일 제품군 내 브랜드 간 성능 비교는 이제 온라인을 통해서도 쉽게 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능 중심의 브랜딩이 힘을 잃은 것이죠. 이제 소비자들은 성능 그 자체보다 브랜드가 제시하는 가치, 그리고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팬덤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시몬스가 실천하고 있는 '침대 없는 브랜딩'은 성능을 우선시 하던 과거의 광고 문법에서 벗어나, 소비자들에게 하나의 가치를 제시하고, 소비자들을 하나로 묶고자 하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죠. 이렇듯 물리적 성능보다 추상적 가치를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는 마케팅 트렌드. 과연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