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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5일은 식목일이었습니다. 나무를 많이 심고 가꾸도록 권장하는 날이죠. 통상적인 관념에 따르면 나무는 야외에 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햇빛과 탁 트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무를 밖이 아닌, 실내에 적극적으로 심은 브랜드가 있습니다. 그것도 한 그루가 아닌 여러 그루를요. 바로 한국 백화점 업체인 현대백화점이 지난 2021년 2월에 선보인 더 현대 서울(The HYUNDAI Seoul)입니다.
더 현대 서울 5층에는 사운드 포레스트(sounds forest)라는 이름의 실내 정원이 조성돼 있습니다. 나무도 많을 뿐더러 나무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공간과 채광이 모두 어우러진 곳입니다. 그런데 얼핏 보면 한국에서 평당 임대료가 비싼 축에 속하는 여의도에서 넓은 공간을 할애해 매장 유치가 아닌 실내 정원을 조성해 놓는 것은 일종의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운드 포레스트가 소비자들이 즐기기에 좋은 공간인 것은 확실한데, 과연 더 현대 서울은 “왜 넓은 공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정원을 조성하고자 했던 것일까요? 오늘은 이 이유에 주목해 왜 더 현대 서울을 비롯한 여러 백화점 및 오프라인 리테일 매장이 ‘체험형 공간’ 조성에 힘쓰는 지를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더 현대 서울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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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 현대백화점 측은 여의도에서 더 현대 서울이라는 이름의 백화점을 신규 오픈했습니다. 그리고 개점 시점으로부터 1년이 지난 올해 2월까지 총 매출 8,005억원을 달성하며, 한국 백화점 업계 사상 최단기간에 매출 1조 클럽에 진입할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더 현대 서울이 개장했던 2021년은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사실상 거의 침체기에 빠진 시기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간 총 3천여만명이 방문하며 괄목할 만한 매출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성과가 더욱 돋보입니다.
더 현대 서울은 그간 20대와 30대 고객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아왔습니다. 더 현대 서울 매출을 연령대별로 분석한 결과 20대, 30대가 도합 50.3%가량의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는 현대백화점 15개 점포의 평균인 24.8%를 두 배 가까이 상회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실제로 SNS에서도 그 화제성을 새삼 체감할 수 있는데요. 소셜미디어에서 더 현대 서울이 언급된 횟수는 100만건을 넘어갑니다.
김형종 현대백화점 사장은 "더 현대 서울은 차별화된 공간 구성과 콘텐츠를 앞세워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MZ세대를 다시 백화점으로 불러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라고 밝혔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 더 현대 서울은 다른 백화점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요?
더 현대 서울만의 차별화
“현대백화점 OO점”이 아닌 “더 현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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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더 현대 서울은 기존의 다른 백화점들과 달리 이름에서 ‘백화점’ 이라는 명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대신 ‘더 현대 서울’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에서 탈피해 소비자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입점 지역인 여의도가 아니라 더 넓은 범위인 서울을 이름에 담았는데요, 이에서도 단순히 여타 백화점의 레플리카가 아니라 서울을 대표하는 백화점으로 거듭나겠다는 상징성과 포부를 동시에 드러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입점 브랜드에서도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요. 더 현대 서울은 기존의 백화점이라면 흔히 입점해 있을 것으로 간주되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매장 없이 출범했습니다.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3대 명품 브랜드 모두 아직까지 입점 의사를 밝히지는 않은 상황이나, 현대백화점 측은 “아직 (명품 브랜드들의 입점에 대해) 확정된 게 없다”면서도 “루이비통 등 다수의 유명 명품 브랜드와 협의하고 있으며 판교점에서도 그랬듯이 명품 브랜드들도 곧 더 현대 서울의 진가를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체 면적의 반 밖에 안 되는 매장 공간, 나머지는 체험형 공간으로 채우다
더 현대 서울은 사운드 포레스트와 같은 실내 조경 공간을 조성하며 전체 면적 중 매장 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51%에 불과합니다. 이 외 나머지 절반가량의 공간은 구매가 아닌 실내 조경이나 고객을 위한 예술, 문화 공간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다른 15개 현대백화점 점포들의 영업면적이 평균적으로 65%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 현대 서울이 영업 그 자체가 아닌 다른 가치에 더 방점을 두었다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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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현대 서울은 ‘백화점에는 창문과 시계가 없다’라는 공식을 깨고 모든 층에 자연채광이 잘 녹아들 수 있는 구조로 공간을 설계했습니다. 특히, 더 현대 서울의 건축 과정에서는 1층부터 천장까지 건물 전체를 개방하는 기법인 보이드(Void) 기법이 활용되었는데요. 이를 통해 층과 층이 차단되는 것이 아닌, 모든 층이 수직적으로 연결되는 효과를 꾀했습니다.
또한, 이 보이드 구조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더 현대 서울 측은 매장 곳곳에 다양한 오브제를 비치했는데요. 가장 대표적으로, 매장 1층에는 12미터 높이의 인공 폭포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더 현대 서울 측은 건물 전체에 리테일 테라피를 접목했다고 밝혔는데요. 리테일 테라피란 소비자들이 쇼핑 과정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통해 힐링하고 그 과정을 좋은 기억으로 남겨 재방문을 유도한다는 전략을 꾀했습니다. 기존 백화점 인테리어가 제한된 면적 안에 최대한 많은 매출을 발생시키기 위해 영업 공간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전략을 세운 것에 반해, 전체 면적의 절반 가량을 고객 휴게 공간에 사용한 것은 더 현대 서울이 국내 백화점 중에는 최초입니다.
지난 1년의 영업을 통해 더 현대 서울의 이러한 전략이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사운드 포레스트에 평균적으로 고객이 머문 시간은 37분으로, 평균 패션 브랜드 매장에 체류하는 시간보다 9배 이상이 길었습니다. 이를 통해 다양한 체험을 통해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린다는 기존의 목표도 달성되었습니다.
MZ세대를 적극 겨냥한 젊은 리테일
더 현대 서울 측이 MZ세대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크게 2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기존의 뻔한 매장이 아닌 MZ 세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매장을 입점시키는 방법, (2) 팝업 스토어 방식을 필두로 한 체험 마케팅입니다.
우선, 더 현대 서울은 MZ세대가 친숙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실제로 더 현대 서울 지하 2층은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라는 이름과 함께 MZ세대에게 친숙한 여러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는데요. 해당 공간을 기획함에 있어 임원진은 “임원이 모르는 브랜드로만 채우라”라는 특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임원진이 알 정도의 브랜드면 이미 고루한 브랜드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기에, 최대한 신선한 브랜드로 채우라는 것이죠.
‘크리에이티브 그라운드’에는 현재 H&M 그룹의 SPA 브랜드인 ‘아르켓(ARKET)’의 첫 아시아 매장을 비롯해,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오픈한 스니커즈 리셀 전문 매장인 ‘BGZT랩’, 편집숍 ‘나이스웨더’ 등, 기존 백화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리테일 스토어들이 입점해 있습니다.
MZ 세대 유치를 위한 또 하나의 전략은 팝업 스토어입니다. 팝업 스토어는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두 달 정도 기간 동안 운영되는 체험형 마케팅 수단인데요. 기업들에게는 짧은 기간동안 마케팅을 펼치며 고객들의 반응까지 살펴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더 현대 서울 측은 그동안 ‘잔망 루피’와 같이 포토존과 굿즈샵을 중심으로 한 팝업 스토어부터 디올의 핸드백 라인 ‘레이디 디올’ 팝업 스토어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팝업 스토어를 유치해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인기 있었던 팝업 스토어는 바로 원소주 팝업 스토어였습니다. 원소주는 래퍼 박재범이 직접 세운 주류 회사 ‘원스피리츠 주식회사’에서 만든 소주로 한 병 당 1만 4,900원이라는 높은 가격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높은 가격이 무색할 정도로 2월 25일부터 일주일간 운영된 팝업스토어에 총 3만 명이 방문했으며 생산 물량 2만 병은 일주일 만에 완판 됐습니다.
이처럼 더 현대 서울 측은 ‘백화점’이라는 다소 경직된 공간 속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MZ 세대 및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다양한 팝업스토어를 계속해 유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체험형 공간 확충에 나선 오프라인 리테일
코로나19로 인한 ‘언택트 시대’가 열리면서 오프라인 유통가는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기도 했었습니다. 요지는 온라인으로 원하는 물건을 편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사람들이 오프라인 공간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비단 일상적인 소비재뿐만이 아니라 명품 소비에서도 나타났는데요. 가령 글로벌 컨설팅 업체 베인&컴퍼니 측은 “온라인 명품 시장 규모가 전년 대비 27% 급성장했으며, 오프라인 성장세를 단숨에 따라잡았다”라며 명품 판매에 초점을 두고 있던 백화점도 이러한 문제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시사점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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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난관 속에서 더 현대 서울은 ‘체험형 공간을 중심으로 한 리테일 테라피’라는 방향성을 제시했고, 이를 성공시킨 것입니다. 오프라인 리테일 공간이 온라인 쇼핑과 비교했을 때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일상에서 벗어나 이색적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더 현대 서울을 출범한 현대백화점 측뿐만 아니라 다른 백화점 브랜드들도 이런 체험형 공간에 방점을 둔 리테일 공간을 새롭게 선보이는 추세인데요. 롯데백화점 측은 작년에 ‘롯데백화점 동탄점’과 ‘롯데백화점 의왕 타임빌라스’를 출범했으며 전자는 공간의 절반 이상을 식음, 리빙, 체험, 경험 콘텐츠로 채웠습니다. 또한, 후자의 경우에는 외부 공간과 자연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요. 쇼핑몰 외부에 잔디광장과 함께 2000평 규모의 야외 공간을 조성하고 이 공간에서도 쇼핑 경험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활용했습니다.
백화점은 앞으로 쇼핑만 즐기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복합 문화생활 공간으로 점차 변모해가며 ‘소비자의 경험’ 제고 및 체류 시간 연장에 초점을 두고 공간을 조성할 것으로 전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