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에 변함없는 가치를 담다, 그래도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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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팜

토마토에 변함없는 가치를 담다, 그래도팜

수만 명이 기다리는 토마토 브랜드가 있습니다. 품절은 기본, 몇 달을 기다릴 때도 있는데요, 바로 '그래도팜'입니다. 디자인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간 브랜드 디자이너, 원승현 대표가 2015년 만든 그래도팜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토마토 브랜드가 됐습니다.

원 대표의 부모님은 1983년부터 유기농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고된 길을 택한 부모는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그래도 해봐야지"를 되뇌며 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원 대표가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직접 지은 이름입니다. 그래도팜에는 부모님의 철학과 용기, 끈기 등의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기적 같은 토마토'라는 뜻을 가진 방울토마토 기토와 서른 가지가 넘는 토마토가 담긴 에어룸 토마토는 비교적 높은 가격입니다. 하지만 가치를 아는 소비자는 지갑을 열고 있습니다. 

전국을 강타한 집중호우가 그치고 햇볕이 내리쬐는 7월의 어느 날,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주천면에 있는 그래도팜을 찾았습니다. 7월은 그래도팜이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이날도 에어룸 토마토의 봄 작기가 막 끝나고, 밭 정리와 다음 작기의 토마토 출하를 함께 준비 중이었습니다. 새롭게 지은 토마토 전시관에서 원승현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는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시원한 커피를 직접 내렸습니다.   


그래도팜의 성공 전략, 모든 것에 진심일 것

🍊 Orange: 귀농을 꿈꾸는 이는 많아요. 하지만 그만큼 쉽게 보고 준비 없이 뛰어들어 실패한 이들도 많이 있죠. 대표님께선 귀농 자체는 반기지만 여러 분야의 철저한 공부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요수익성을 따져 특별한 작물을 택하기보다는 나만의 기술력을 가진 일반 작물에 공을 들일 것을 권하셨고, 처음부터 무리한 재배 면적에서 농사를 시작하지 말라 하셨어요. 이외에도 그래도팜을 처음 시작하실 때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을까요?

🎙️ 원승현 대표: 농사의 힘듦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요. 경험이 없는 젊은 층이 농촌에 들어왔을 때 힘들 수밖에 없어요. 일단 요즘 강조되는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가 없어요. 1년 내내 주말이 없어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살고 싶다고 하지만 자녀와 만날 시간이 없어요. 주말이라도 쉬면 같이 어디를 갈 텐데, 주말조차 쉬지 못하니 자녀들이 방치되는 것이죠. 저희는 부모님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그나마 상황이 나은데, 만약 부부가 아이와 함께 아무 기반 없이 산다고 가정하면 그런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요.

물론 창업한다는 건 좋은 이야기예요. 농업에 종사하겠다는 것도요. 하지만 농업을 단순히 식물을 심고 수확한다는 정도로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농부는 정말 어려운 직업이에요. 우선 반복 학습이 잘 통하지 않아요. 농부는 식물이 더 건강하고 잘 자랄 수 있게 처방하는 의사와도 같아요. 매일도 아니고 매시간 날씨가 바뀌죠. 작년 이맘때와 올해 날씨도 다르고, 당장 내일의 날씨도 예측할 수 없는데요. 오늘도 오전까지 폭우가 내리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비추고 있잖아요.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입니다. 게다가 새로운 시도를 해도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도 않아요. 식물의 임상실험 주기는 6개월이라 결과를 보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죠. 어려운 산업인데도 불구하고 얕은 지식과 다짐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요즘은 100시간 교육을 받고 농업 전문가 타이틀을 주는 곳도 있어요. 실패할 수밖에 없죠.

그래도팜의 에어룸 토마토 ⓒ 그래도팜

🍊 Orange: 대표님께선 디자인을 전공하시고 브랜드 디자인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셨어요. 타인의 브랜드에 가치를 부여했던 이는 고향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키우는 토마토가 더 빛날 수 있게 했어요. 분명 남다른 의미였을 거로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관점에서 제품을 브랜딩할까?'라는 질문을 가진 '디자인 씽킹'이 중요하다 하셨죠. 실제로 그래도팜의 브랜딩은 성공적이었어요. 스토리텔링과 감각적인 패키지로 큰 인기를 얻었죠. 처음 자신의 브랜딩을 시작하는 이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 원승현 대표: 먼저 내실을 다져야 해요. 많은 사람이 브랜딩을 오해해요. 단순히 없는 것을 만들어서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화려한 옷을 입힌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브랜드의 성격에 어울리는 옷을 입히는 게 중요해요. 시각적인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브랜드의 핵심가치가 시각적 화려함보다 중요한 이유예요. 특히 브랜드만의 정체성을 주는 독창성이 핵심이죠. 내실에 초점을 맞춰 개발한 브랜드는 화려한 치장 없이도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껍데기만 화려한 브랜드는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별 차이가 없을 수 있어요. 화려한 브랜드가 처음에는 더 잘 나갈 수도 있죠. 하지만 경영을 한시적으로 잘하는 것과 브랜드를 잘 만드는 것과는 달라요. 브랜딩은 장기적인 싸움이에요. 내실을 다진 브랜드가 더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죠. 녹차 브랜드를 예시로 들어볼게요. 경영진이 녹차에 진심이 아니라면 얼마 못 갈 거예요. 하지만 경영진이 녹차를 단순한 사업 아이템이 아닌 진심으로 좋아하고, 더 나은 녹차를 위해 고민하고 탄탄한 내실을 쌓는다면 분명 오래 갈 수 있어요.

성공적인 브랜딩 사례인 그래도팜 ⓒ 그래도팜

🍊 Orange: 브랜딩을 할 때 내실이 있고 없음을 어떻게 파악하나요?

🎙️ 원승현 대표: 간단해요. 본인은 분명 알아요. 알지만 외면하는 거죠. 단순히 단기적인 수익만을 원한다면 상관없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걸 성공적인 브랜딩이라 하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 Orange: 그래도팜이 젊은 농업인들에게 성공적인 롤모델이 되기 위해 새로운 실험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그래도팜에서 일을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농업을 가르치고 계세요.

🎙️ 원승현 대표: 그래도팜의 철학 중 하나는 젊음의 패기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하자'예요. 농업 기술을 알려주는 대신 무급으로 근무하는 열정페이 같은 관행은 농업계에 비일비재해요.  경영자 입장에선 임금을 안 줘도 되니 편할지 몰라도, 이들이 미래를 설계하는 데 많은 지장이 생겨요. 저희는 그런 관행을 답습하고 싶지 않아요. 저희의 꿈과 함께 하는 이에게 직원으로서의 합당한 급여를 지급하고 있어요. 동시에 그들의 목표를 이룰 수 있게 미래 설계를 도와주고 있고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신경 쓰는 상황이라 직원을 어느 이상 받기에는 한정돼 있어요.

 

🍊 Orange: 2015년에 처음 그래도팜을 시작하셨죠. 벌써 8년이 지났는데요.

🎙️ 원승현 대표: 전 과거보단 현재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생각나는 게 있어요. 선택의 연속이었죠. 돌이켜보면 제 삶을 반 정도는 포기하고 살았어요. 직원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모든 기획을 저 혼자 했어요. 낮에는 농사를 지었고, 밤에는 잘 시간을 쪼개가며 기획 일을 했죠. 누군가가 보기엔 멋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을 희생했기에 할 수 있었어요

물론 8년 전으로 돌아가도 같은 일을 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보단 효율적으로 하고 싶어요. 예전에는 들어오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어요. 정해진 시간이 따로 없었죠. 일과 일상의 구분 없이, 할 수 있는 만큼 더 했는데요. 불안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목맨다고 더 빨리 가지는 않더라고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살면서 가장 아까운 게 시간이에요. 조금 있으면 그래도팜을 시작한 지 10년째예요. 제가 대학에 들어갈 때 40대셨던 부모님께서 벌써 70세를 바라보고 계세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죠. 인생이 찰나에 불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쓰고 싶고, 한정된 시간 속에서 조금 더 발전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여유가 없어진 것 같아요. 일에 대한 욕심과 여유를 가지고 싶은 욕심은 지금도 계속 충돌하고 있고, 균형을 지키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래도팜의 에어룸 토마토 ⓒ 그래도팜

🍊 Orange: 그래도팜엔 3만여 명이 넘는 소비자가 있습니다. 재구매자 비율이 궁금해요. 주문 신청 후 배송까지 오랜 기간이 걸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구매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비자들의 재구매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따로 있나요?

🎙️ 원승현 대표: 2021년에 저희 토마토를 드셨던 분 중 현재까지 드시는 분이 80% 정도예요. 이탈자 비율이 매우 낮죠. 재구매율의 이유는 단순해요. 한국에 맛있고 다양한 토마토가 없기 때문이에요. 대체재가 적은 것이죠. 사람의 혀는 굉장히 예민한 센서예요. 맛있는지, 맛없는지 바로 구분합니다. 맛있다면, 돈을 더 주고서라도 구매하죠. 반면에 재구매율이 낮은 농작물은 딸기와 복숭아 같은 것이에요. 같은 맛을 가진 대체재가 많기 때문이죠. 대체재가 많은 상품이더라도 저희처럼 좋은 농작물을 만드는 곳이 있다면 소비자들이 이탈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한국의 농업 환경을 바꾸는 게 먼저일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농사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아요. 좋지 않은 토질을 가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농작물의 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그 악조건을 화학비료로 극복했어요. 흙에서 재배하는 이점이 사라지는 것이죠. 비료 물을 녹인 영양액 안에서 재배하는 스마트팜과 다를 게 없어요. 해외에선 스마트팜의 문제점이라고 지적되는 약한 향 같은 부분이 한국에선 크게 문제 없죠. 일반 밭에서 나는 농작물도 똑같으니까요.

아쉽게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농업 종사자가 많아요. 토마토는 품종별로 향이 다 달라요. 그 향이 드러나려면 땅의 순환 체계가 회복된 곳에서 자라야 해요. 실제로 저희 그래도팜에서 키우고 있는 토마토의 잎을 만져보면 토마토 특유의 향과는 다른, 그 품종 특유의 배경 향이 나요. 한국 마트에 있는 토마토를 드셔보시면 약한 감칠맛과 향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매력적인 토마토가 무미건조한 식품이 된 거죠.

상큼한 향이 나는 그래도팜의 토마토 잎. 여름 작기 수확을 앞두고 있다.

원승현 대표는 진짜 토마토의 향을 보여주겠다며 토마토밭으로 데려갔습니다. 7월 말에 수확할 여름 작기 토마토가 초록빛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토마토 잎을 쓸어서 그 향을 맡아보면 토마토 향의 매력을 알 것이라 했습니다. 그동안 맡아왔던 밋밋한 토마토 향을 생각하며 잎을 만졌습니다. 조금만 쓸었는데도 생각한 것과는 다른 상큼한 향이 났습니다다른 토마토의 잎을 쓸었더니 그 향이 전부 다 달랐습니다. 이전에 갔던 토마토밭과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원승현 대표에게 정말 향이 다르다고 말하니 환히 웃었습니다.

🎙️ 원승현 대표: 무미건조한 토마토에 맛을 내기 위해 가공하기도 해요. 스테비아 토마토가 그 예시인데요. 겉보기엔 일반 토마토처럼 보여도 사실 감미료를 첨가해 인위적인 단맛을 내는 가공품이거든요.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고 사는 이들은 많이 없어요. 건강한 토마토로 착각하고 구매하는 이들은 향과 감칠맛 대신 단맛이 강한 토마토가 좋은 토마토라고 오해해요. 단맛이 강한 것이 꼭 좋은 건 아니거든요. 이런 인식이 쌓이고 쌓이면 생산자는 판매를 위해 당도를 점차 높이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죠. 미각은 복합적인 요소예요.

그래도팜 파밍라이브러리에 마련된 미각 관련 도서 코너 

저희 서재를 보시면 꽂혀 있는 책의 카테고리 중 미각 부분이 따로 있죠. 전 미각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해. 사람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하잖아요. 사피엔스는 원래 '맛보다'라는 의미가 있는 'Sapere'서 온 말이에요. 우리는 맛을 볼 줄 아는 종족인 거죠. 인간은 들숨만 맡는 다른 생물체들에 비해서 날숨까지 맡을 수 있는 구강구조로 되어 있어요. 먹는 음식의 냄새를 같이 맡으면서 먹는 거죠. 인간을 제외한 어떤 동물도 자기가 좋아하는 풀들을 골라서 심지 않아요. 인간만이 서로 다른 맛들을 조합하고, 자신만의 취향이 있죠. 전 그것 때문에 문화가 발달했다고 봐요.

토마토에 대한 서적으로 가득한 그래도팜 파밍라이브러리. ⓒ 그래도팜

그래도팜이 2023년 서울국제도서전에 초청받았을 때 왜 토마토 브랜드가 도서전에 초청받았는지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때 도서전의 주제는 '비인간'이었고, 저희는 비인간성에 저항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에요. 전 앞으로의 세계는 굉장히 비인간스러워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농업 종사자가 대량으로 종자회사에서 구입한 단독 품종 생산을 하고 있어요. 생산하는 곳만 다르지 다양성이 결여되고 있어요. 사람이 먹는 음식이 동물이 먹는 사료와 차이가 없게 된 것이죠. 이러한 현상이 누적되면 개개인의 식재료 취향이라는 게 사라질 거고, 자연스럽게 인간성 또한 사라질 거예요. 사람이 진화하는 것보다 세상은 더 빠르게 바뀌어요. 지금 우리는 조금만 먹어도 쉽게 살이 찌죠. 들어온 영양소를 최대한 유지하는 유전자 때문인데, 우리의 상황은 그렇지 않죠. 인간이 진화해 비인간성에 저항하는 것보다 비인간적인 농업이 우리를 잡아먹는 것이 더 빠를 수 있어요.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세상이 얼마나 대처 불가능하게 변했는지 많이 느꼈으리라 생각해요.


좋은 토마토를 키우기 위해선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 Orange: 그래도팜만의 무기가 많아요. 천연 퇴비가 예시죠. 토마토도 한국에는 없던 품종을 상품화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다른 기존 농장은 왜 이러한 품종을 시도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요. 이전 인터뷰에서 농장주분들이 타 농작물과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함, 경쟁력을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는데, 비슷한 이유일까요?

그래도팜의 토양 ⓒ 그래도팜

🎙️ 원승현 대표한국의 농업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큰 규모의 생산자라고 착각해요. 그래서 생산성을 첫 번째 우선순위로 둬요.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한국은 생산성 위주의 농업을 할 수 없거든요. 해외의 농업은 기본이 10헥타르에서 시작하는데, 한국은 규모가 1헥타르도 안 되는 곳이 생산성을 따져요. 다른 나라의 농장에서 키운 것과 한국의 농장에서 키운 작물이 같은 수준이더라도 해외의 생산성이 더 크기 때문에 한국 농가는 가격을 낮출 방법이 없어요. 대신, 작은 농장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무기를 만드는 것이죠. 만약 그래도팜이 큰 규모로 시작했다면 에어룸 토마토와 같은 시도도 어려웠을 거예요.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 농업 종사자들은 그런 자각 없이 안주해 있어요. 한국의 여러 산업은 독창성을 가진 상품을 잘 모방하고, 이를 통해 성장해 왔어요. 하지만 농업은 그렇지 않아요. 성공한 이의 방법을 모방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죠. 퇴비만 봐도 그래요. 저희는 잘게 부순 참나무 껍질을 발효해 만드는 천연 퇴비를 쓰고 있어요. 그래서 좋은 품질이 나오죠. 저희 토마토는 근처 토마토 농가보다 1kg당 몇 배 이상의 가격으로 높게 팔리고 있어요. 그러면 퇴비 제조법을 배울 법도 한데, 가격을 보고 한탄만 하지 배우려 하는 분은 없어요.

잘게 부순 참나무 껍질을 발효해 만든 그래도팜의 퇴비 ⓒ 그래도팜

한국은 농작물의 우수성을 따질 때 경도와 균일성을 봐요. 경도가 강하면 썩지 않고 오래 모양을 유지할 수 있고, 모양이 균일해야지 포장과 가격 매기기가 수월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의 에어룸 토마토는 경도도 약하고, 제각각 다른 크기를 가지고 있어요. 기존의 시장에서 상품화가 어려워요. 에어룸 토마토를 가락시장과 같은 도매시장에서 판매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그래서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대신, 스스로가 브랜드가 돼 팔아야 해요.

그래도팜의 토마토 밭 ⓒ 그래도팜

한국 농업은 보수적인 산업이기도 하고,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고 치부하는 사람이 많아요. 많은 사람이 한 해 벌이로 살아가며 단기적인 수익에 집착해서 더욱 그래요. 큰 특징이자 문제가 농부들이 경영비 분석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농사하며 들어가는 돈과, 모든 경비를 제하고 최종적으로 남는 돈의 액수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죠. 많은 농부가 수확했을 때의 돈을 수익으로 봐요. 농업기술센터에서 농업 종사자분을 대상으로 경영비 분석 강의를 했던 적이 있어요. 어느 분이 영업이익을 3천만 원이라 적었어요. 지출에 인건비는 포함을 안 한 거죠. 이외에도 포함 안 한 비용을 감안하면 실제 영업이익은 1년에 2천만 원 정도였어요. 한 달에 180만 원 정도죠. 한 해 농사로 고생한 것에 비하면 그리 많은 금액이 아니죠. 가격 인상을 제안하면 농사짓는 사람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요. 남는 게 없다는 분들이 왜 자선사업을 하는 것처럼 말하는지 모르겠어요올라간 가격에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경쟁력 있는 결과물을 내면 되지 않을까요. 농업 생산자가 결과물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건 좋아요. 하지만 남이 만든 농작물을 한 번도 안 먹어봤으면서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죠.  

또 다른 수확을 준비하는 그래도팜 농장의 모습 ⓒ 그래도팜

🍊 Orange: 에어룸 토마토도 처음에는 40종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여러 작기를 테스트해 보면서 정착시킨 결과 현재는 15종을 재배하고 계세요. 산지마다 기후와 토마토를 키우는 방법이 조금씩은 달라 우여곡절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또한 맛을 5가지 영역으로 분류할 때, 에어룸 15종이 골고루 분포될 수 있도록 하셨는데요. 이 과정도 듣고 싶어요.

🎙️ 원승현 대표: 저희는 토마토를 F1 종자가 아닌, 수확한 토마토에서 씨앗을 얻는 자가채종 방식을 통해 종자를 유지하며 키우고 있어요. 지금도 제가 해외에서 자가채종 된 씨앗을 조금씩 더 들여오는 식으로 테스트를 이어가고 있어요. 재배 과정에서 여러 품종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돌연변이인 자연교잡종을 발견하면 따로 채종해서 재배해 보기도 하죠. 자연교잡종이 벌써 3종이 있어요. 그중 하나는 골든 호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농사일을 배우고 계신 소망씨 부부에게 얼마 전 아이가 생겼어요. 세 사람의 '금빛 미래를 희망한다'는 뜻에서 지은 이름이죠. 이들을 3년 정도 고정해서 그때도 같은 종자가 나오면, 해외에 보내 보려고 해요. 유전자 동일성을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종자면, 저희가 지은 이름이 세계적으로 쓰이는 이름이 될 거예요. 기대됩니다.

골고루 분포된 맛은 사실 처음엔 예상 못 한 부분이에요. 토마토의 기본 맛에는 단맛, 짠맛, 감칠맛, 쓴맛, 신맛이 있어요. 전 디자이너니, 재배할 토마토를 색깔과 크기의 다양성을 중시했어요. 재배해서 수확한 후 서울대 푸드 비즈랩과 센소 메트릭스와 함께 저희 토마토를 분석하니 맛 자체도 골고루 분포돼 있더라고요. 예상치 못한 다양성이었죠.

한국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토마토는 생산성을 위해 개량된 F1 씨앗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F1 씨앗의 형질은 대를 건너 유전되기 어렵기 때문에 농부들은 매년 농작물 기업에서 새롭게 씨앗을 사고 있습니다.  반면, 그래도팜의 토마토는 F1 종자가 아닌, 수확한 토마토에서 다음 해 농사에 쓸 씨앗을 얻는 방식의 자가채종 토마토입니다. 생산성이 비교적 낮고 키우기 어렵지만, 대를 이어 동일한 형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 Orange: 지금 유기농 인증은 농약과 화학비료 불검출 요건에만 맞으면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인증 과정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농민들에게 완전한 유기농으로 바꿀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좋은 토양은 장기적으로 어떠한 부가가치를 줄 수 있을까요 

🎙️ 원승현 대표한국의 유기농 인증은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 유무를 까다롭게 확인하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졌어요. 정상적으로 유기 순환 생태계가 회복되며 선순환하고 있는 토양인지 봐야 하는데, 판단하기 복잡하니 제외한 것이죠. 제일 핵심적인 부분을 포함하지 않았어요. 살충제와 화학비료, 기계에 의존하는 관행 농업을 하시던 분들이 그냥 기존의 화학비료를 유기비료로 바꾸고, 농약 쓰던 것을 천연 농약을 쓰는 식으로 바꾸세요.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지만 토양의 생태계는 나아지지 않아요.

그래도팜의 토마토가 유기농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분들은 일부에 불과해요. 저희 토마토가 맛있으니 구매하는 것이죠. 소비자들은 직관적으로 맛있다고 느낀다면 돈을 더 주면서까지 구매해요. 호주의 남부 최대 시장인 빅토리아 마켓에 가면 농작물 쪽 코너가 유기농과 비유기농 농작물이 나뉘어 있어요. 입구만 가도 작물의 색깔과 향 차이도 커요.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죠. 그런 차이가 나면 사람들도 돈을 더 내고서라도 유기농 농작물을 구매할 거로 생각해요.

전 소비자가 농작물을 먹는 것이 끝이 아니어야 한다고 봐요. 더 맛있는 농작물을 먹기 위해선 우선 소비자도 농작물에 대해 많이 배워야 해요. 인터뷰 중에도 계속 전화가 오죠? 토마토를 팔 수 있느냐고 묻는 전화예요. 토마토는 식물이죠. 설비와 재료만 있으면 되는 공산품처럼 바로바로 생산할 수 없어요. 이미 작기가 끝나 토마토를 뽑았으면 농사가 끝난 건데, 소비자들은 제게 토마토를 줄 수 없냐고 물으세요. 농작물을 더 깊게 이해하는 소비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더 가치 있게 생산하는 농작물을 찾아 구매했으면 해요. 그래야 저희 같은 이들이 더욱 늘어나요. 에어룸 토마토가 다른 토마토보다 비싸니 사 먹지 않겠다는 이들이 많으면 저희 일을 유지할 힘이 없어지니까요.

이젠 많이 사라진 '토종'이 브랜딩 요소로 봤을 때 참 좋은 요소예요.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키워 환경과도 잘 맞고, 그곳에서만 나고 자랐다는 스토리도 있죠. 하지만 한국은 지난 70년 동안 생산량이 높지 않고 균일하지 않다는 이유로 토종 품종 대신 보다 생산성이 좋고 균일한 품종을 심어왔어요. 원래 가진 무기를 알아보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무기로 생각했던 것이죠.

충청남도 공주에 가면 곡물집이라는 곳이 있어요. 저처럼 디자이너 출신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곳이죠. 이곳에선 지역에서 생산되는 곡물들을 팔고, 이를 활용한 음료를 만들어요. 핵심은 하나예요. 그 지역에서 나는 것이 답이다. 우리가 맛집 얘기 많이 하잖아요. 맛집이라는 것이 뭘까요? 누구에겐 취향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그것들을 하나의 취향으로 엮어서 보편적인 사람들이 다 맛있는 것처럼 느끼게끔 하는 곳이 정말 맛있는 식당일까요? 맛의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요. 전 쌉싸름한 맛이 더 맛있지만, 누군가는 약간 들큰한 게 맛있을 수도 있죠.

비교적 단 대추 방울토마토인 기토를 드시던 소비자가 제게 에어룸 토마토가 맛있는지 질문을 하셨어요. 제가 답하기엔 애매했어요. 맛있다, 맛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대신 품종마다 향이 다르고요. 향이 다른 것 중에서 자기 취향이라는 게 있을 수가 있다 말씀드리죠. 그렇게 에어룸 토마토를 받아보신 분들 중에선 "기토보다 달지 않네요" "단맛이 없어 맛없네요"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에어룸 토마토가 가진 향과 감칠맛이 아닌, 단맛이 맛의 기준이 된 분들이죠.

이제 단맛이 안 나면 맛없는 음식이 되는 건가 생각해요. 그럼,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건 다 단맛만 나면 될까요? 그렇진 않죠.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일이에요.  모든 것들이 동물이 먹는 것처럼 획일화하는 사료화 과정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이죠. 어떻게 보면 당연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극복하고 싶어요.

 

🍊 Orange: 토양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그래도팜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직접 토양전시관을 세워 그래도팜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토양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5년 후의 농업 환경이 어떻게 바뀌었으면 하는지 궁금해요.

소비자들에게 토양의 중요성을 알리는 그래도팜의 토양 전시관 ⓒ 그래도팜

🎙️ 원승현 대표우리는 유기농과 같은 자연 재배가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농사는 지구에 해악을 끼쳐요. 인간이 개입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우리는 농사를 짓지 않고선 먹고 살 수가 없어요. 어느 정도의 생산성을 갖고 토양생태계를 유지하는 농업이 중요해요. 이 같은 역할을 그래도팜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팜은 일회성 구매가 아닌, 재구매와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소비자로 유지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가 토마토에 대해서 잘 알았으면 해요. 왜 저희의 방식이 필요하고, 소비할 가치가 있는지 알았으면 해요. 가끔 소비자에게 토마토가 터졌다는 연락을 받아요. 연락을 주신 이유는 환불이나 교환 때문이죠. 이러한 일이 계속되면 저희로서는 위험 부담이 되니 점점 덜 익은 토마토를 따게 됩니다. 덜 익은 상태에서 배송할 땐 생기지 않는 일이니까요. 덜 익은 토마토는 저희가 생각하는 토마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요.

 

🍊 Orange: 실제로 많은 이탈리아인은 대형 마트에 가는 대신 각자가 지향하는 농업 방식으로 생산된 농장의 채소를 소비하고 있어요. 사전 조사를 위해서 어제 미리 토마토 농장을 다녀왔어요. 수확이 한창이었는데, 안에 붉은 기가 도는 덜 익은 초록색 토마토를 따시더군요. 이 상태에서 배송해야 소비자들이 받아보실 땐 붉은 색으로 변한다고 하셨어요.

익기 전의 토마토. 그래도팜은 완전히 익은 후에 토마토를 수확한다. ⓒ 그래도팜

🎙️ 원승현 대표맞아요. 시중에 있는 토마토는 대부분 그런 상태에서 따요. 아쉬운 부분이죠. 토마토의 향은 나무에서 익힌 것과 따서 후숙한 것의 차이가 최대 20배까지 나요. 적은 차이가 전혀 아니에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비자들이 터진 토마토를 받았을 때 기분 나빠하기보다는 '잘 익었다'라고 받아들이는 날이 왔으면 해요.

 

🍊 Orange: 그런 정보를 소비자에게 더 알리고 싶었기에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시는군요.

🎙️ 원승현 대표그렇죠. 저희가 만든 교육 자료와 프로그램을 통해 토마토의 특성,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어요. 저희와 이야기하며 토양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가시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가 된 거죠. 저기 보이는 건 하나씩 보관할 수 있는 토마토 보관함이에요. 이탈리아 디자이너와 함께 협업했고, 곧 시판할 예정이에요. 토마토는 공기가 잘 통하는 실온에 하나씩 보관해야 가장 오래 보관할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 만든 제품이죠.


 지금처럼, '그래도' 가치를 지켜나간다

🍊 Orange: 고된 농사일입니다. 그런데도 그래도팜의 가치관, 절대 타협하지 않고 좋은 토양에서 태어난 다양성 있는 토마토라는 가치를 지켜나가고 계세요. 가장 큰 원동력이 무엇이라 보시나요?

🎙️ 원승현 대표사실 전 시골살이가 지긋지긋했어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죠. 고등학교 때 별명이 '교감 선생님' 였어요. 여기를 떠날 방법은 대학을 서울로 가는 방법밖에 없었으니까요. 사실 귀농한 후 1년 반은 짐을 안 풀었어요. 언제든 이곳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죠. 지금은 정착을 했지만 여기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냐는 물음엔 대답을 쉽게 할 수가 없어요. 주말도 없이 일하고 있고, 세 아이와 시간도 제대로 보내지 못하죠.

몇몇은 제게 시골에 오니까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 살 수 있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시골이 더 뛰놀 곳이 없어요. 지금 마당 보이시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마당을 넓혀놨어요. 시골길엔 인도도 없고, 화물차가 시속 70km로 좁은 농로를 달리는 곳이에요. 어떻게 아무 데서나 자전거를 타고 뛰어놀겠어요. 전 나이가 들면 그래도팜이라는 법인이 자생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설계한 후 도시로 가 살고 싶어요.

그래도 여전히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사명감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제 일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진심으로 농사를 짓고 계세요. 아버지의 모습을 어려서부터 늘 봐 왔죠. 아버지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만두지 못했어요.

원승현 대표가 소비자를 위해 만든 토마토 체험관 ⓒ 그래도팜

🍊 Orange: 그래도팜의 길을 보면 단순히 브랜드를 알린다는 목적 이상으로 보여요. 1년 전 인터뷰에서 에어룸 토마토를 시작한 이유는 품종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사람들이 자신만의 미식 취향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하셨죠. 잘 오고 계신가요

🎙️ 원승현 대표전 그래도팜을 시작할 때부터 창업농들이 따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누구보다 정직하게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돈을 더 쓰는 한이 있어도 적법하게 사업을 이어왔죠. 이제 방향이 바뀌는 일이 크게 없지만, 여러 규제가 발목을 자꾸 잡아요. 저도 예상보다 몇 배에 달하는 예산을 쓰는 등 우여곡절이 너무 많았어요. 따라오시는 분들이 잘 따라오실지 걱정이 돼요

 

🍊 Orange: 그래도팜은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어요. SNS에서 여러 차례 화제가 되기도 했죠. 다양한 소통 채널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채널과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 원승현 대표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채널이 가장 중요해요. SNS에선 저희의 토마토와 가치관을 온전히 느낄 수 없기 때문이죠. 저희도 소비자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요. 현재 저희가 적지 않은 수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지만, 늘 추구하는 소통은 SNS와 같은 일방적 소통이 아닌 쌍방향 소통 피드백이에요. 저희의 가치관과 토마토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과 피드백을 들을 수 있거든요.

토마토 체험관에서 토마토를 맛보는 소비자 ⓒ 그래도팜

이는 대형 브랜드가 아닌 저희 농장 같은 작은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봐요. 코로나 이전엔 소형 브랜드가 대부분 대면 마케팅을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많은 소형 브랜드들이 비대면 마케팅으로 전환했어요. 그런 브랜드 중 정확한 수치를 통해 마케팅을 진행하는 곳은 많이 못 봤어요. 대부분은 주먹구구식이죠. 단순히 팔로워가 늘고, 좋아요가 많아지면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 것이라 예상해요. 소비자를 직접 만나지도 않고 소비자가 우리를 좋아할 것이라는 가정은 정말 위험해요. 실제와 SNS는 차이가 있죠.

원승현 대표는 체험관에서 그래도팜 토마토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 그래도팜

저희를 예로 들어볼게요. 현재 그래도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22천 명 정도인데, 저희의 게시글 당 좋아요 평균 개수는 300개에서 400개 정도예요. 이는 실제 농장을 찾아주신 열 명의 소비자보다 못할 수 있어요. SNS상의 숫자보다는 이곳에 오셔서 저희와 대화하는 이가 많아지는 것이 더 중요해요. 서울에도 가능 한 자주 올라가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소비자를 만나고 싶어요.

성수동에서 열리는 농부 시장 마르쉐 등의 행사에 여건이 닿는 한 참여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요. 지금도 723일까지 오뚜기의 브랜드 공간인 롤리폴리꼬또에서 그래도팜의 팝업 전시를 하고 있어요. 저희도 가야 하는데 너무 바쁘다 보니 어려워요. 저희가 없으니까, 소통이 부재한 관람이 될 거라는 것이 참 아쉬워요. 그래서 소비자와  지속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들고 싶었어요. 농장 체험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제가 도슨트로 참여하는 플레이버 오브 토마로우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저희가 재배하는 토마토는 미술관의 그림과 같아요. 조금이라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건 차이가 커요. 모르는 상태에서 본다면 안 본 것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프로그램에 오면 제가 직접 농장과 토마토, 토양과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관에 관해서 설명해 드리고, 저희 토마토를 활용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게 하고 있어요. 분명 서울에서 오기 쉬운 거리는 아니지만, 저희의 주 소비자인 MZ 세대들은 취향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고, 가치 있는 것에 돈과 시간을 쓴다고 생각해요. 그 점을 믿고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팜의 작물을 설명하고 있는 원승현 대표

가만 보면, 원승현 대표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만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힘든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사업은 선택의 연속이죠. 하나를 얻게 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해요. 그래서 아쉬움이 없는 사업은 없어요. 묵묵히 계속 가고 있다고 봐야죠. 제가 상상했던 것 중에서 대부분은 이루어 가고 있어요. 무언가 고민할 때마다 저희 아내가 맨날 농담해요. '당신은 하겠다면 하는 사람이잖아'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래도팜은 얼마 전 영월 농산물 종합가공센터의 시설을 이용해 기토로 주스를 만들었습니다. 사이트에서는 품절됐지만, 가족과 함께 마시려고 남은 것이 있다며 한 팩을 건넸습니다. 8년간의 노력이 시원한 주스 한 팩에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토마토의 계절 여름, 글을 쓰는 지금도 원승현 대표는 밭으로 나가 다음 작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의 노력 덕에 토마토는 오늘도 조금씩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노력과 자연이 함께 만든 다음 작기의 토마토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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