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가볍게 즐기는 혼술 (혼자 마시는 술), 홈술 (집에서 마시는 술) 트렌드가 대세가 됐습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와인은 확고히 자리잡은 하나의 문화죠. 와인 시장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계속 상승해 연 2조 원에 달하는 황금시장이 됐습니다.
자연스레 경쟁도 치열해졌습니다. 대기업도 시장에 많이 뛰어들었죠. 와인은 고객이 직접 매장에 방문해 구매해야 하는 주류 품목으로, 모객 효과는 물론 객단가 향상에도 도움이 되는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경쟁과 함께 성장세도 한 폭 꺾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의 경기 침체도 한몫했는데요, 내리막길로 접어든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경쟁력이 그만큼 중요해졌습니다.
뱅가드와인머천트를 알고 계시나요? 2016년 설립된 후 세계 각지에서 350종의 와인을 수입하고, 수도권에 여섯 곳의 오프라인 매장을 함께 운영하며 유통 단계를 최소화한 와인수입사인데요. 초창기부터 SNS 위주의 마케팅을 진행했고, 소규모 와인 수입사 중 가장 많은 SNS 팔로워를 자랑하죠. 치열한 와인 시장에서 살아남은 비결, 그 답을 알기 위해 강남 지점에서 정해강 대표를 만났습니다.
IT 엔지니어에서 와인 수입사 대표까지
🍊 Orange: 대표님의 경력이 독특하세요. 와인 비즈니스에 진출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수입사 경력이 있으신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대표님께선 일본에서 11년 동안 계셨고, 한국에 들어와 식당을 하시다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정해강 대표: 맞아요. 전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 직장을 다녔어요. 그 후 일본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 라쿠텐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는데요. 라쿠텐의 일도 맞았고, 급여도 만족스러웠지만 외국인이다 보니 미래는 안 보였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같은 일을 하자니 일본에서보다 급여도 적고, 발전 가능성도 낮아 보였죠.
그래서 선택한 게 일본에서의 경험을 살려서 제 사업을 하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제가 좋아하는 사케 사업을 해볼까 했는데 당시만 해도 이자카야가 많지 않아 수요층이 한정적이었어요. 대신 선택한 일이 요리였는데요. 요식업 경험이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일본에서 요리를 배워 한국의 요식업에 진출하자 결심했죠. 사표를 내고 바로 요리를 배웠어요. 나이 있는 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게 도쿄에 있는 고급 가이세키 식당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일하기 전까지만 해도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라면이나 간신히 끓이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어떤 분야든 한번 해보면 분명 잘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요리는 손기술이 중요하고, 이는 계속 반복해서 수행하면 내 몸에 익는 일이잖아요. 제가 하던 개발이라는 일도 결국 키보드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에요. 전 천재적인 개발자는 아니지만, 개발하며 어떤 주어진 업무를 풀어내거나 만들어 내는 일에는 자신이 생겼죠. 요리도 똑같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주어진 업무를 반복하니 요리도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요. 2014년 한국에 돌아와 식당도 열었어요.
🍊 Orange: 뱅가드와인머천트를 2년 뒤인 2016년에 시작하셨어요.
🎙️정해강 대표: 뱅가드와인머천트를 시작한 이유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식당을 할 때 영업 준비부터 마감까지 거의 하루를 매장에서 다 보냈어요. 그러다보니 지속가능성에 의문이 들었는데요. 그때 결심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계속하면서 살 수 있게 다른 터전을 만들어야겠다고. 다행히 사회에서 와인 업계에서 오래 계셨던 지인분들이 있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죠.
🍊 Orange: 보통은 그렇게 된다면 지속 가능성을 위해 식당을 그만두고 와인에 집중해야겠다 하고 생각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도 사실 두 사업을 2023년 초까지 함께 해오셨어요. (식당은 2023년 초에 건물 리모델링으로 폐업)
🎙️정해강 대표: 시작할 때는 규모가 작았어요. 딱 5개 와이너리의 와인만 있었으니까요. 지금 계신 강남 지점 매장의 진열대 3분의 1도 못 채웠어요. 스타트업 개념으로 우선은 작게 시작하고, 차차 키워나가자는 마음이었는데요. 그렇다 보니 둘을 병행하면서도 체력적으로나 자본적으로, 아니면 시간상으로도 크게 무리가 없었던 것 같아요.
다만 수입사와 매장을 동시에 운영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매장을 열었기 때문에 매장 근무를 병행해야 했어요. 처음에는 무리가 없었는데 계속하다 보니까 건강이 나빠졌어요. 직원이 없는 날엔 제가 오전 10시까지 가서 문을 열어야 했죠. 매일 4시간 남짓 잤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집에 오다가 쓰러졌어요. 몸에 무리가 온 거죠.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메니에르 병 판정을 받았어요. 균형 감각에 이상이 생긴 거죠. 그때 두 가지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을 느꼈어요. 식당 영업시간을 변경하니 한결 나아지긴 했죠. 돌이켜 보면 일을 하면서 번아웃이 온 적은 없어요. 다만 체력이 부족해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 못한 게 아쉬워요.
🍊 Orange: 사실 일식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사케가 더 편했을 것 같은데요.
🎙️정해강 대표: 예전에는 일본 음식엔 무조건 사케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제가 식당을 처음 시작할 때도 손님들을 보면 절반 넘게 화이트와인과 샴페인을 선호하더군요. 식당의 주류 리스트도 그렇게 구성했을 때 많은 분이 좋아하셨고요. 시장 자체가 와인이 훨씬 비교도 안 되게 큰 것도 이유였어요. 사케는 일본이란 한 나라에만 있는 주종이고, 대부분의 좋은 사케들이 이미 수입 중이에요. 반면 와인은 전 세계에서 생산하고 있어요. 이미 많은 와인 수입회사에서 상당수의 좋은 와인들을 수입하고 있음에도 알려지지 않은 좋은 와인이 많아요. 다양한 국가의 생산자가 각자의 다양성을 뽐내는 와인들을 만들고 있지요. 그 때문에 와인 시장은 언제나 레드오션으로 보이지만, 와인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관점에 따라 블루오션으로 시작할 수 있는 업계가 와인이라고 생각해요.
레드오션 속에서 블루오션을 찾다
🍊 Orange: 타 대형 와인 수입사나 유통업계와 비교했을 때 뱅가드와인머천트만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정해강 대표: 저희의 강점은 단순한 비즈니스 모델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긴 유통 경로를 없애자. 우리가 수입한 와인을 저희 숍에서만 100% 소비하자. 그 모델에서 지금도 하나도 변한 건 없어요. 저희가 수입한 와인은 저희 직영점에서만 판매하니 코로나 시대임에도 오프라인 매장을 계속 늘려올 수 있었죠. 그 비즈니스 모델을 지켜나가는 게 아마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어요.
🍊 Orange: 독특하네요. 매장은 아무래도 고정비용이 들잖아요. 수입한 와인을 다양한 채널에 유통하는 것이 돈은 더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정해강 대표: 우선 가격 경쟁력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은 가격에 민감해요. 하나의 와인을 살 때도 끊임없이 다른 곳들과 가격을 비교하고,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들을 공유하죠. 저희는 직접 수입한 와인을 직영 매장에서만 팔고 있어요. 수입사가 와인까지 독점 판매하는 곳은 저희밖에 없어요. 다른 유통 비용 없이 저희의 이윤만 붙여서 판매해요. 소비자들에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여기서 사면 가장 저렴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그 목표를 위해서는 다른 곳에 저희가 수입한 와인을 유통할 수가 없죠. 저희의 와인을 유통사가 얼마에 팔지는 그들의 마음이잖아요. 저희가 책정한 가격보다 높게 팔릴 때도 있고, 그 와인이 인기가 많아지면 책정가보다 몇 배나 더 비싸게 파는 사람도 있겠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손해를 각오하고 저희보다 더 저렴하게 팔아도 문제이긴 해요. (웃음) 저희가 소비자들에게 최선의 가격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그냥 저희도 흔하디 흔한 수입사가 되는 거고, 직영 매장을 할 이유도 사라지죠.
저희 직영 숍에서는 다른 수입사의 와인을 팔지 않아요. 정보의 비대칭성이 크게 작용하는 게 와인 시장입니다. 잘 안 알려진 와인을 가져와 와인 가격을 잘 모르는 소비자에게 비싸게 판매하는 경우도 있죠. 그런 일을 우리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저희보다 더 훨씬 큰 대형 수입 업체가 같은 와인을 들여온다고 해도 저희보다 저렴하게 못 팔 거예요. 저희의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판매하면 이윤을 남기지 못할 거고, 수입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는 저희가 수입하는 와이너리의 특성도 커요. 물량에 따라 가격 협상이 가능한 대형 와이너리는 대형 수입 업체가 대량 구매를 조건으로 할인된 가격을 요구할 수 있어요. 그렇게 계약이 맺어진 와인은 더 저렴하게 팔 수 있죠. 하지만 저희는 가족 경영을 유지하는 비교적 소규모의 와이너리와 거래해요. 덕분에 비교적 소량으로 구매해도 대량으로 구매하는 것과 가격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요.
상품성보다는 다양성을 향해, 이들이 와인을 고르는 법
🍊 Orange: 뱅가드와인머천트가 수입 검토 단계에서 와인을 고르는 기준이 궁금해요.
🎙️정해강 대표: 와인의 수입 판단 기준에는 수입사의 방향성이 반영돼요. 물론 와인 수입에 있어 상품성은 중요한 판단 기준이에요. 잘 팔리는 와인을 수입해야 이윤이 나고, 이윤 추구가 회사의 목적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품성이 전부는 아닙니다. 와인을 수입할 때 상품성이 1순위가 아닐 때가 많아요. 같은 지역의 상품성 있는 와이너리 대신 다른 와이너리에서 나온 와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희 와인들은 전 세계에서 수입되지만, 뱅가드의 취향이 담겨 있는 건 모두 같아요. 저희는 대중적으로 무난한 와인보다는 독특한 특색을 가진 와인을 선호해요.
예를 들면 최근 소비자가 쿨 클라이밋 와인(서늘한 기후에서 생산된 와인)을 선호하는 추세예요. 쿨 클라이밋 와인은 비교적 알코올 도수가 낮고, 보디감이 가벼우며, 과실의 향이 섬세해요. 세련된 느낌이 강하죠. 예전에는 소비자들이 웜 클라이밋 와인(더운 날씨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선호했어요. 알코올 도수가 높고, 장기간 숙성이 가능하며, 보디감이 묵직할 뿐만 아니라 풍미가 진한 와인이죠. 묵직하고 잼처럼 진득해요. 그런데 이런 트렌드랑 상관 없이 저희는 초창기부터 타 수입사들과 다르게 쿨 클라이밋 와인을 많이 수입해왔죠.
이러한 방향성에는 품질에 대한 신뢰 그리고 제가 가진 안목이 많이 작용해요. 저희가 좋아하는 와인은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한 와인이에요. 땅에서 나는 포도를 그냥 으깨서 먹었을 때의 맛이 그대로 와인에 표현된 와인이 자연스러운 와인이고 더 좋은 와인이라 생각해요. 대형 와이너리는 상품성을 위해 양조 과정에서 오크 에센스와 같은 첨가물을 넣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와인이 대중의 입맛을 더 사로잡을 수 있겠죠. 하지만 품질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뱅가드와인머천트가 수입하는 와인 중에는 대형 와이너리에서 만든 와인이 별로 없어요. 대신 지역 밀착형 중소규모 와이너리가 많아요. 가문 대대로 이어지거나, 가족 경영을 하는 식이죠. 상품성이 목적이라기보단 포도 재배 환경이나 지역의 품종을 잘 반영한 와인 생산자들 위주예요. 한국에서는 팔기 힘든 스타일이지만, 그런데도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와인이 있어요. 이런 와인은 저희가 알리면 된다고 생각해요. 고객들도 한번 마셔보면 그 와인의 가치를 알아보리라 믿어요. 그렇게 수입한 와인도 많아요.
🍊 Orange: 와인 시장에서 평균 이상의 품질을 갖춘 와인은 많습니다. 대체재도 많다는 이야기인데요. 아무래도 다른 와인 사이에서 눈에 잘 띄도록 만들어 주는 홍보 마케팅이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뱅가드와인머천트는 사업 초기부터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요. 와인 수입사 1위인 신세계 L&B의 팔로워 수와 비슷하죠. 어떻게 처음부터 SNS를 활용할 생각을 하셨나요?
🎙️정해강 대표: 대표인 저부터가 변화하는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해요. 그러기 위해서 SNS 관리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대표인 제가 하고 있어요. 사업 초기부터 SNS를 공격적으로 활용한 데엔 전략적인 판단이 컸어요. 와인 구매력이 가장 큰 연령대는 중장년층이에요. 하지만 앞으로 와인을 접하고 마실 사람은 젊은 층이죠. 젊은 층을 만나기 쉬운 곳은 SNS예요. 10년, 20년 후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젊은 층을 타깃을 해서 마케팅을 하자는 판단이었습니다.
전략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예산적인 부분도 고려했어요. 사업 초창기에는 자금이 넉넉하지 않았어요. 와인 마케팅에 쓸 돈은 훨씬 부족했어요. 그 당시에는 광고 대행사를 통한 블로그와 광고성 기사를 통한 마케팅이 많았어요. 그런데 살펴보니 SNS를 통한 마케팅이 투자 대비 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다른 마케팅 대신 SNS 마케팅을 꾸준히 파고들었죠. 이러한 노력이 운이 좋게도 SNS의 성장과 맞물렸어요. 그렇게 SNS를 통해 알게 된 소비자가 매장에 방문하고, 좋은 평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저희를 만들었어요. 요즘 들어 아쉬운 것이 있다면, 7년 전에는 전 젊었을 거 아니에요. 지금도 새로운 콘텐츠를 접하며 트렌드를 따라가려 하는데, 그때랑 달라서 쉽지 않아요. (웃음)
🍊 Orange: 와인 산업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다고 해요. 두 시점 모두를 경험하셨는데, 코로나 전후로 비교했을 때의 상황을 듣고 싶어요. 와인 시장뿐만 아니라 본인에게도 새로운 분기점이나 계기가 되셨나요?
🎙️정해강 대표: 당시 모든 산업이 다 위기로 빠질 거라고 했는데 다행히 성장 동력이 된 시기였어요. 운이 좋았죠. 반대로 코로나 이후에는 경기와 함께 와인 시장도 나빠질 거라고 예상해요. 전체 시장도 마이너스로 가는 추세죠. 하지만 경기는 늘 변동해요. 그때마다 매번 사업을 접거나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어요. 회사는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속 가능해야 하고, 계속돼야 하죠.
와인은 생산국, 소비국도 정말 다양하고, 소비층도 넓어요. 이 정도 경기 변동은 언제나 있어 온 일이고 앞으로도 있을 일이에요. 상황을 조금 낙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해요. 와인 시장은 꾸준할 수밖에 없는 시장이에요. 와인은 잠깐 반짝하다가 사라질 아이템이 아니기 때문에 이 넓은 시장을 믿고 일하면 어려울 건 없다고 생각해요. 조금 나빠졌다고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상황이 나빠졌으면 언젠가 좋아질 거라 믿어요. 그때까지 살짝 웅크리고 있으면서 우직하게 저희가 하던 일을 계속해야죠. 할 수 있으면 전보다 좀 더 잘하면 되는 것이고요. 그러다 상황이 좋아지면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말처럼 노를 힘껏 저으면 됩니다. 꾸준하게 계속 가 보는 것. 이게 중요합니다.
🍊 Orange: 성장 속도도 궁금한데요, 대략적인 규모를 알 수 있을까요?
🎙️정해강 대표: 코로나19 전까지 매년 계속 100% 이상 성장을 계속했어요. 코로나-19시기엔 저희 회사 규모가 훨씬 커져 100%까진 성장을 못 했지만, 다른 회사가 성장한 만큼은 성장한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후를 맞이한 지금은 단기간의 성장에 집중하지 않으려 해요. 와인 수입사의 성장 규모가 비슷해 보여도, 내부의 상황은 서로 틀리고, 불황에 따라 받는 타격도 다르거든요. 어려울 때조차도 조금씩 성장하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신뢰하는 파트너가 되는 법
🍊 Orange: 와인 수입은 단순히 좋은 와이너리를 방문해 와인을 가져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좋은 와인을 가져오기 위해 와이너리와 지속적인 관계 유지를 해야 하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해외의 좋은 와인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파트너사와 신뢰를 구축하는 본인만의 방법이 있나요?
🎙️정해강 대표: 저희는 대형 와이너리의 와인들도 수입하고 있지만, 저희가 선호하는 와이너리의 스타일 때문에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가족 혹은 오너가 직접 경영하고 있는 와이너리를 파트너로 선호해요. 소유주가 직접 관리하는 작은 규모일수록 소유주와의 직접적인 소통이 훨씬 수월하다는 장점도 있어요.
좋은 관계를 만드는 건 주고받기 원칙을 지키는 데에서 시작해요. 저희가 와이너리에 아무것도 없이 독점 공급을 요청할 수 없는 거고 와이너리도 저희에게 자신의 와이너리 물건만을 팔라고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계약을 해야죠.
우리 회사는 파트너로서 신뢰를 잘 구축했다 생각해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한국 수입사가 해외 와이너리와 계약을 맺고 와인을 수입했어요. 한국 소비자 반응이 미적지근하다면 다음 해부터 발주하지 않는 수입사가 있어요. 해외 와이너리가 한국이라는 시장을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이는 두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 시장 전체에 민폐인 행동이죠.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에요. 저희는 한 번 딱 수입하는 식으로는 절대 와이너리를 고르지 않습니다. 대신 해외 와이너리와 파트너십을 맺을 때 두 가지를 약속해요.
우선 저희는 파트너 와이너리의 와인을 한국 소비자가 알 수 있게 SNS 채널로 홍보할 것을 약속해요. 다음으로는 파트너 와이너리의 와인을 중단 없이 매년 꾸준히 수입할 것을 보장해요. 대신 와이너리도 저희와 약속할 것이 있죠. 저희만 그 와이너리의 와인을 독점적으로 수입할 수 있도록 요청해요. 그 합이 맞는다면 파트너가 됩니다. 이러한 파트너십이 지속되면 서로간의 사이도 끈끈해져요. 최근 저희가 수입하는 와이너리 관계자들이 한국에 방문해 시음회 등 행사를 진행했어요. 저희가 요청한 것이 아니었어요. 먼저 한국 방문을 희망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꾸준한 성장을 보여준 한국이라는 시장이 궁금했던 것이죠.
🍊 Orange: 처음 5곳의 와이너리로 시작한 물량이 현재 50곳의 와이너리로 늘어난 것도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가요?
🎙️정해강 대표: 네, 정확합니다. 잠깐 와인이 팔리지 않는다고 와인을 바꾸는 건 생산자와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손님들한테 좋은 와인을 소개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산자와 신뢰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일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역업은 필요한 것이 있는 사람들을 중간에서 이어주는 직업이에요. 저희의 상호에 상인을 뜻하는 '머천트' 가 들어간 것처럼. 좋은 생산자와 좋은 소비자를 서로 이어주는 책임에 충실하고 싶어요. 생산자와 소비자 둘 중 하나만 존재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더 다양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미래를 향해
🍊 Orange: 와인 사업에서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정해강 대표: 큰 규모는 아니지만, 잘 팔리는 와인만 수입하는 걸 벗어나서 한국 와인 시장을 다양하게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래서 초창기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포트와인, 마데이라 와인을 수입했고 최근에는 이탈리아 빈산토 와인을 수입하기 시작했죠. 대중성이 비교적 약한 종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입한 와인이 한국 와인 시장에 다양성을 주는 일에 보람을 느껴요. 다행히 소비자들의 기호도 예전보다 다양해졌기 때문에 이제는 걱정 없이 계속 판매하고 있어요.
🍊 Orange: 지금은 어떠한 장르의 와인을 수입해도 이를 좋아할 수 있는 계층이 분명히 있다 보니 더 긍정적이겠네요.
🎙️정해강 대표: 맞아요. 소비자 시장이 이제 그렇게 바뀐 게 매우 긍정적이죠. 위스키 시장과 같이 기호식품에서 질적인 성장이 계속 이뤄지고 있어요. 화이트와인, 스파클링 와인도 당분간은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아요. 시장이 작아지더라도 다양성은 유지될 전망이에요. 저희 같은 도전을 하는 이들에겐 고무적인 소식이에요. 저희가 소개하는 와인을 통해 한국 와인 시장이 다양해졌으면 해요. 정말 다른 스타일의 와인이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이 저희의 선택을 신뢰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계속 노력해야 할 부분이죠.
특정 산지에선 특정 와인을 마셔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사실은 그게 전부가 아니에요. 와인 산지를 가면 기존에 알던 와인과는 다른 스타일을 가졌지만 더 뛰어난 와인도 있어요. 그런 보석 같은 와이너리들이 단지 소개가 안 됐다는 이유만으로 저평가받는 모습들이 늘 아쉬웠어요. 그런 평가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저희가 처음 소개한 호주 와인이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는 포도로 만든 쿨 클라이밋 와인이었어요. 하지만 당시 한국 시장의 호주 와인은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 포도로 만든 와인이 대세였어요.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어 과감하게 수입 결정을 내렸어요. 그 와인이 지금은 잘 팔리는 와인 중 하나가 됐죠. 상품성 위주의 판단만으로는 와인 시장의 저변을 넓힐 수 없어요.
와인 사업에 뛰어들고 싶은 사람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묻자 정해강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와인은 공부해도 끝이 없는 주종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생산자가 만드는 뛰어난 품질의 와인도 발품을 팔면 찾을 수 있죠. 그래서 모두에게 사업의 기회가 열려 있지 않나 생각해요. 와인 사업의 핵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해외 파트너와의 신뢰를 남들보다 더 잘 유지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핵심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즈니스 모델을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거품 없는 가격으로 다양한 와인을 마실 수 있게 하자.'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뱅가드와인머천트가 지켜온 원칙입니다. 선봉대를 뜻하는 뱅가드라는 이름처럼 전 세계의 알려지지 않은 와인들을 거품없는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소개했습니다.
6월 22일부터 24일까지 열린 2023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에서 정해강 대표를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탈리아 바롤로 지역의 와이너리 비베르띠 (VIBERTI) 의 담당자와 함께 다양한 와인을 준비한 그는 방문객들에게 와인을 따라주며 다양한 색깔을 가진 와인을 소개했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식당부터 와인 유통업까지, 회사를 나와 제가 했던 일들은 모두 고객을 상대하는 일이었어요. 결코 쉽지 않았어요. 소비자의 항의도 많이 있었고, 불량에 대처하는 일도 많았죠. 하지만 그 어떤 일보다 보람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이에요. 이를 원동력으로 해 계속 가보고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에서 진정성이 느껴진 이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