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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
지난 26일, 대법원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임금피크제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고용 보장 혹은 정년 연장을 조건으로 임금을 감축하는 제도인데요.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증가하는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고령화로 인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고, 신규 인력 채용을 확대하고자 2000년대부터 도입되기 시작했죠.
2013년, 노동자의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늘어나며 임금피크제는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임금피크제의 도입 이후 연령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하며, 신규 고용을 증가시킨다는 기존의 목표가 제대로 달성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2014년,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하던 연구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며 임금피크제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는데요. 해당 연구기관은 55세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는데, 임금피크제를 적용 받은 A씨가 삭감됨 임금을 돌려줄 것을 연구기관에 요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최근 대법원은 해당 사건에서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결하며 A씨의 손을 들어주었는데요.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정당성과 관련해 판결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임금피크제, 무효인 이유는?
대법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임금을 차별하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고령자고용법은 임금이나 복리후생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요. 해당 소송에서 대법원은 임금피크제는 인건비 부담 경감 등 경영 성과를 제고할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기에, 55세 이상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A씨의 업무 내용이나 업무량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는데요. 오히려 당시 A씨를 포함한 만 55세 이상 직원들의 성과는 만 51세 이상, 55세 미만의 직원들의 성과보다 높은 수준이었죠. 이렇게 동일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연령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습니다.
임금피크제, 앞으로 어떻게 될까?
대법원은 임금피크제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제시했습니다. 임금피크제의 합리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이 타당한지, 근로자들이 입는 불이익이 어느 정도인지, 임금 삭감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임금피크제로 절감한 인건비를 본 목적에 맞게 사용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인데요. 즉, 임금피크제 자체가 무효인 것은 아니고,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하는 경우에만 임금피크제가 효력을 가진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한편,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에 제동을 걸면서 기업들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임금피크제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된 만큼, 해당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채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기업들은 임금피크제의 내용을 수정해야 하는데요. 예컨대,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직원의 업무를 줄이거나, 정년을 연장하는 식이죠. 이에 따라 국내 임금체계 전반에 있어 상당한 개편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임금피크제에 관한 첫 판결이 나오면서 현재 진행 중인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는데요. 또한, 임금피크제로 인해 줄어든 임금을 지급하라는 소송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대법원이 임금피크제 자체를 무효화한 것은 아니기에 각 기업의 임금피크제 운영 방식에 따라 소송 결과는 상이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 INHYE
수년간 논란이 되었던 임금피크제의 정당성에 대해 대법원이 처음으로 판결을 내놓았는데요. 현재 50%가 넘는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채택하고 있는 만큼, 업계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