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네일 출처: Wikipedia Commons)
작년 12월 14일 <아바타2: 물의 길>이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했습니다. 전작인 <아바타>가 어마어마한 흥행 돌풍을 일으킨 덕에 <아바타2: 물의 길> 역시 개봉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요. 기대했던 대로 엄청난 흥행에 나선 <아바타2: 물의 길> 8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습니다. 뜨거운 열기 탓에 아이맥스나 4Dx 같은 특수상영관 티켓은 이미 한 달 전부터 매진됐고, 고가의 암표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아바타2: 물의 길>의 키워드를 세 개 꼽자면 SF, 바다, CG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다룰 인물을 상징하는 키워드기도 한데요. 바로 <아바타>와 <아바타2: 물의 길>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입니다. <터미네이터>와 <에일리언2>, <타이타닉>, <아바타>의 감독이자 블록버스터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감독으로 알려진 그는 흥행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죠. 기발한 상상력으로 전 세계인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계에 뛰어든 SF 덕후
- 1954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SF 장르에 빠져있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두 시간 내내 공상 과학 소설을 읽을 정도였죠. 이러한 그의 SF 사랑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가 청소년기를 보낸 60년대는 아폴로 11호를 통해 인류가 최초로 달에 도착하고, 10,000m 넘는 심해 탐사에 성공한 시기였죠.
- 그런 제임스 카메론에게 - 은 황홀경 그 자체였습니다. “공상과학 소설들을 읽으며 상상했던 그 어떤 장면보다도 다채롭고 이국적인 모습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여기서 바다에 매료된 그는 한때 스쿠버다이버를 꿈꾸기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시작된 그의 바다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죠.
- 이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을 중퇴하고 영화 제작자를 꿈꾸던 제임스 카메론은 트럭 운전사로 일하다가 1977년, 영화 <스타워즈>를 보고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스타워즈에 영감을 받아 친구와 만든 12분짜리 습작 영화, <제노제네시스>를 발표한 것이죠. 제임스 카메론은 각본은 물론 스톱 모션 등 특수 효과 기술을 직접 담당했습니다.
<터미네이터>의 대성공
- 이후 제작자 로저 코먼의 스튜디오에서 일하게 된 제임스 카메론은 영상 제작과 특수 효과 기법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합니다. 1980년 <우주의 7인>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미니어처를 제작하면서 영화 연출 작업을 시작했죠. 그 뿐만아니라 <공포의 혹성>, <뉴욕 탈출> 등 B급 SF 영화에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참여해 특수 효과를 담당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 1981년 제임스 카메론은 <피라냐2>의 감독을 맡으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합니다. 그러나 제작자의 입김이 너무 강해 제대로 된 감독 역할을 할 수 없었죠. 제작자가 그가 고용된 이유도 투자를 받는 조건으로 북미 출신 감독을 선임해야 했기 때문이었는데요. 결국 이름만 감독이었던 제임스 카메론은 3주도 채 되지 않아 해고됐습니다.
- 제임스 카메론은 기계 인간이 불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꿈에서 영감을 받고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가는데요.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1984년 개봉한 <터미네이터>입니다. 그는 <터미네이터> 제작을 위해 시나리오를 1달러에 넘긴다는 조건까지 감수했습니다. SF 액션 영화로 화려한 볼거리와 파격적인 스토리로 인기를 끈 <터미네이터>는 약 8천만 달러 수익을 올렸습니다. 제작비의 20배가 넘는 돈을 벌어들이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죠.
블록버스터 무비의 시작
- 이후 1986년 <에일리언2> 연출에 나선 제임스 카메론은 속편은 성공할 수 없다는 속설을 깨고 1억 3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 성공합니다. <에일리언2>는 영화 평론가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는데요. 블록버스터 무비로서 시청각 연출에 큰 획을 그은 것은 물론 주인공 리플리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며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기 때문이죠.
- 제임스 카메론이 가진 바다에 대한 애정이 처음으로 드러난 영화는 1988년 개봉한 <어비스>입니다. 심해 속 문명을 발전시킨 외계인들과 인류가 대결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인데요. CG를 활용해 물로 이뤄져 자유자재로 형태를 변형하는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했죠. 어도비에서 CG 활용 당시 사용된 프로그램의 판권을 사들여 '포토샵'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제작비 1억 달러 안팎이 투입된 <터미네이터2>, <트루 라이즈> 등을 연이어 연출하며 블록버스터 무비 제작비 상승을 주도해왔습니다. 동시에 최신 CG 기술을 통해 화려한 영상미를 보여주며 특수 효과 기법 발전에 기여했죠.
타이타닉으로 역사를 쓰다
- 흥행의 제왕으로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커리어는 1997년 <타이타닉>의 성공으로 정점을 찍었습니다. 개봉 당시 18억 달러 넘는 수익을 기록한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은 2009년 <아바타>가 개봉하기 전까지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타이타닉>의 제작 과정은 예상외로 험난했는데요. 제작비가 애초 책정된 1억 5천만 달러를 훨씬 넘어 2억 달러 이상 들어갔기 때문이죠. 결국 제임스 카메론은 자신이 받을 8백만 달러의 개런티를 포기하면서까지 영화 촬영을 이어갔습니다.
- 감독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휩쓸며 역대급 기록을 쓴 <타이타닉>은 재난영화의 모범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데요. 2007년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한 ‘100대 영화 목록’의 83위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 <터미네이터>, <에일리언2> 등 제임스 카메론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타이타닉>에도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 의식이 녹아있습니다. <타이타닉>도 마찬가지. 당대 첨단 기술의 복합체였던 타이타닉호가 예상을 깨고 배가 처참하게 침몰하는 모습은 인류의 과학 기술은 절대 완벽하지 않으며 이를 맹신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죠.
영화 제작자이자 탐험가, 제임스 카메론
-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보다 <아바타>를 먼저 구상했지만 CG 기술의 한계 때문에 영화 제작을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결국 <아바타>는 2009년에 와서야 개봉할 수 있었죠. "블록버스터 역사의 새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려하게 성공한 <아바타>는 개봉 당시 27억 달러 넘는 수익을 기록하며 전 세계 1위 흥행 영화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 영화 <타이타닉> 이후 잠시 영화계를 떠나 해양 탐사에 나선 제임스 카메론은 로봇 잠수정을 조종해 타이타닉호 갑판을 바라보는 경험을 합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내 몸이 실제로 타이타닉호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느껴졌다"라며 작은 로봇 잠수정을 조종하면서 생애에서 가장 초현실적인 데자뷰를 경험했다고 밝혔죠.
- 제임스 카메론은 해양 탐험가로도 꾸준히 활동하며 여러 편의 해양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 북대서양에 가라앉은 독일의 전함 비스마르크호를 취재한 <비스마르크호의 비밀>, 실제 타이타닉호가 가라앉은 심해를 탐험한 <심해의 영혼들>, 대서양과 태평양 심해를 탐사한 <에일리언 오브 더 딥> 등이 대표적이죠.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를 탐험하는 그의 여정은 다큐멘터리 <딥씨 챌린지>에 담기기도 했습니다.
호기심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상상 속 세계를 최신 기법들을 통해 영화로 구현해 냈습니다. 동시에 해양 탐험가로서 모험에 나서며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마세요. 그리고 모험을 하세요"라는 조언을 스스로 실천하고 있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한계를 뛰어넘는 상상력과 모험심을 보여주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 그가 다음번엔 어떤 프로젝트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할지 기대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