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자 DEEP BYTE에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오징어게임, 구독자 여러분도 재미있게 보셨나요? 오징어게임은 벌써 전 세계 약 1억 5천만 가구에서 시청했다고 하는데요. 흥행이 성공적이었던 만큼 오징어게임에 대한 다양한 비평과 분석도 많이 나왔습니다. 특히 오징어게임을 두고 ‘자본주의의 모순을 풍자한 계급 서사’라는 평가가 잇따랐는데요. 오늘은 과연 오징어게임은 성공적인 계급서사였는지, 또, 오징어게임이 대중적으로 소구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지 다뤄보고자 합니다.

오징어게임은 계급서사일까?

영화평론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이 오징어게임의 핵심 주제이자 흥행요인이라고 평가합니다. 평론가 김선영은 오징어게임의 핵심 성공 요인이 “계급, 계층의 단절과 갈등에 대한 비판의식”이라고 봤고, 언론들도 오징어게임이 “역전 불가능한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풍자”했다고 봤죠. 황동혁 감독 역시 오징어게임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거대한 은유”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오징어게임을 과연 계급서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작품이 계급성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각 계급을 상징하는 사람들이 서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한쪽은 돈, 기업, 부동산 등을 소유한 자본가로, 다른 한쪽은 자신의 노동력 외에는 팔 것이 없는 노동자로서 제시되는 그림을 보여줘야 하겠죠. 그리고 두 계급 간의 적대적 갈등관계가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이런 계급관계를 나름대로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기생충에서는 물리적으로, 또 후각적으로 부자와 빈자가 대비되고,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빈자를 상징하는 기택이 부자를 상징하는 박 사장을 칼로 찔러 죽임으로써 그 갈등관계가 해소되죠.

오징어게임 역시 계급의 구분을 다양한 요소를 통해 구현해내고 있습니다. 먼저 게임에 참여하는 사람과 게임의 주최자인 VIP들은 물리적으로, 시각적으로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VIP들은 참여자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공간에 있지만, 참여자들은 그들을 볼 수 없게 설계되어 있죠. 또, 주최자부터 게임의 진행요원, 그리고 참가자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사람들은 각각 화려한 옷, 빨간색 옷, 그리고 초록색 옷을 입으면서 확실하게 구별됩니다.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기훈의 모티프가 쌍용차 해고노동자였다는 점 역시 감독이 이러한 구분을 염두에 뒀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이 드러난다고 해서 오징어게임을 계급서사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오징어게임은 게임 전개의 배경으로서 계급관계를 활용하고 있긴 하지만, 두 계급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단지 작품의 말미에서 자본가 계급을 상징하는 일남과 노동자 계급을 상징하는 기훈의 조우만이 있을 뿐이죠. 이 장면에서도 별다른 갈등은 발생하지 않고, 한파 속에 떨고 있는 사람을 한 자애로운 사람이 구해주는 휴머니즘적인 장면이 등장하며 작품은 마무리됩니다.

결국 오징어게임은 계급성을 작품의 배경으로 상정하면서도, 두 계급 간의 갈등을 낭만적인 휴머니즘으로 애매하게 해소해버리면서 불완전한 계급서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그 어떤 계급 갈등도 몇몇 사람들의 휴머니즘으로 해결되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오징어게임을 완전한 계급서사로 보긴 무리가 있겠죠. 아무래도 이런 결말은 척박한 사회 속 인간성의 회복을 강조하는 황동혁 감독의 세계관에 기인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오징어게임은 왜 재미있을까?

사실 오징어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등장인물들의 승리를 위한 처절한 투쟁에 대해 공감과 연민을 느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청자들이 사실상 오징어게임의 VIP들과 같은 시선을 공유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오징어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사실상 VIP들에게 오징어게임이 재미있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죠. 그리고 여기에서 휴머니즘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