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과 삼성전자의 성적표가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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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전자

마이크론과 삼성전자의 성적표가 다른 이유

'반도체의 쌀'이라 불리는 메모리 반도체. 스마트폰부터 서버, 자동차까지 다양한 산업에 필수적인 부품으로 자리 잡았죠.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주요 기업인 미국의 마이크론과 한국의 삼성전자는 최근 상반된 실적을 내놨습니다. 동종 업계 기업이 이렇게나 정반대의 성적표를 내놓는 건 매우 이례적인데요. 오늘 <산업 한입>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현재 상황은 어떤지, 두 기업의 성과가 엇갈린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보고자 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메모리 반도체가 뭐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메모리 반도체는 기억(Memory)을 담당하는 반도체입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서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CPU GPU 등 시스템 반도체에 비해 비교적 공정이 단순하고 생산이 어렵지 않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주로 D램과 플래시 메모리로 분류됩니다. D램은 기기의 전원이 꺼질 경우 저장된 데이터가 사라지는 휘발성 메모리입니다. 전원을 켜둔 채 놔둬도 시간이 지나면서 데이터가 소멸한다는 단점이 있는데요. 주로 컴퓨터나 스마트폰, 태블릿PC, 스마트TV 등에 사용됩니다.

플래시 메모리는 D램과 달리 전원이 꺼지더라도 데이터가 그대로 저장되는 반도체입니다. 주로 많은 양의 정보를 오래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불러와 읽는 데 쓰이죠. USB 드라이브나 SD카드, SSD 같은 저장 장치에 활용되는데요. 반도체 칩 내부의 전자회로 형태에 따라 직렬로 연결된 낸드플래시와 병렬로 연결된 노어플래시로 구분됩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이 꽉 잡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의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마이크론)가 치고 올라오는 중인데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이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빅3로 통합니다. D램 시장점유율은 올해 1분기 기준 삼성전자(43.9%), SK하이닉스(31.1%), 마이크론(21.5%)입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3~4년의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이는데요. 이런 현상을 반도체 사이클이라고 부릅니다. 2~2.5년의 호황(슈퍼사이클)이 이어지고 나면 1.5~2년 정도의 불황(다운사이클)이 찾아오죠. 메모리 반도체는 수요와 공급, 경기에 민감하기 때문에 사이클이 생깁니다. 전자제품이나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늘어나면 이에 따라 칩 가격이 급등하고, 이에 반도체 생산이 늘면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재고가 쌓이면서 자연스레 가격이 하락하는 구조죠.

 

👑 왕좌에 오르기 위해선 이걸잡아야

AI시대,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습니다. HBM AI 연산을 담당하는 칩인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부품인데요.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점유율 90% 이상을 차지하는 엔비디아는 자사 GPU에 사용될 HBM을 필요로 합니다. 엔비디아의 GPU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서는 것처럼, HBM도 공급 부족 상황이죠. SK하이닉스의 HBM은 이미 2025년도 생산분까지 완판됐습니다.

🔍 그래픽처리장치(Graphics Processing Unit, GPU): 컴퓨터에서 그래픽 연산을 처리해 결괏값을 모니터에 출력하는 연산 장치입니다. 수많은 단순 계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어 많은 연산이 필요한 AI 학습에 널리 활용됩니다.

HBM은 한 번에 전송할 수 있는 데이터양(대역폭)에 중점을 둬, 기존보다 많은 양의 데이터를 단번에 전송할 수 있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입니다. D램을 여러 개 쌓아 면적당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용량을 확대했는데요. AI 모델 연산에 막대한 메모리 용량의 빠른 전송이 필요해지면서 HBM의 필요성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일반 D램에 비해 가격이 5∼6배 높은 고부가 제품이죠.

이에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빅3는 하나같이 HBM 투자에 집중해 왔는데요. 현재 HBM 시장의 선두는 SK하이닉스이고,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추격자입니다. 작년 HBM 시장점유율은 SK하이닉스(53%), 삼성전자(38%), 마이크론(9%) 순서였습니다.

SK하이닉스는 2028년까지 103조 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액 중 80% HBM AI 관련 사업에 할당한다고 밝혔습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HBM 설비투자를 작년 대비 약 2.5배 늘리겠다고 밝히기도 했죠. 마이크론은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24GB HBM3E 8단 제품의 양산을 시작하는 등 무섭게 따라잡는 중입니다.

🥇 쏟아지는 세계 최초, 뭐가 진짜야?

HBMHBM(1세대)- HBM2(2세대)- HBM2E (3세대)- HBM3(4세대)- HBM3E (5세대) 순으로 개발됐습니다. 이제 시장은 HBM4(6세대)의 경쟁에도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 2024 2, 삼성전자 세계 최초로 36GB HBM3E 12단 개발에 성공
  • 2024 2, 마이크론 세계 최초로 24GB HBM3E 8단 양산 시작
  • 2024 9, SK하이닉스 세계 최초로 36GB HBM3E 12단 양산 시작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엇갈린 성적

🌟 후발주자의 자신감

마이크론은 HBM 시장의 후발주자이지만, 지난 2분기부터 자사 주요 고객사인 엔비디아에 최선단 5세대 HBM3E 제품을 공급하는 등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에는 36GB HBM3E 12단 제품 개발에 성공하면서 HBM 시장 경쟁에서 더욱 격차를 좁히는 모습인데요. 마이크론은 내년 HBM 시장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는 걸 목표로 합니다.

더구나 지난달 말 발표된 실적은 마이크론의 파워를 제대로 입증했습니다. 올해 3분기 매출(77 5,000만 달러)과 주당순이익(1.18달러)이 모두 시장 전망치(매출 76 6,000만 달러, 주당순이익 1.11달러)를 뛰어넘었는데요. AI 관련 탄탄한 수요를 바탕으로 올해와 내년에 생산될 HBM 제품은 이미 매진됐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습니다. 마이크론의 강세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공급 과잉 우려는 누그러졌죠.

 

⛈️ 삼성전자 제국이 흔들린다

지난 8일 발표된 삼성전자의 3분기 잠정 실적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영업이익(9 1,000억 원)이 시장 전망치(10조 원 이상)를 크게 밑돌았고, 특히 반도체 사업 부문(DS)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1조 원 넘게 줄어든 것으로 보이는데요.

삼성전자 매출과 영업이익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단연 반도체 사업(DS) 부문인데요. DS 부문 중에서도 특히 메모리 반도체의 생산 및 판매가 전체 실적을 이끕니다. 1993년부터 삼성전자는 글로벌 D램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해왔죠. 전영현 삼성전자 DS 부문 부회장은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라면서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내기도 했습니다.

 

🤔 삼성전자가 울상짓는 배경

같은 메모리 기업인데 마이크론과 삼성전자의 실적이 이렇게나 극명하게 갈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삼성전자는 HBM 같은 첨단 공정보다 PC와 스마트폰 중심의 D램 등 범용 메모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요.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 특성상 IT 기기의 수요가 약해지면 다운사이클이 찾아오고,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마이크론이 데이터센터나 AI 서버 등 수익성은 높고 변동성은 낮은 수요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비교되는 지점이죠.

특히나 삼성전자의 실책 중 뼈아팠던 건 HBM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주도하는 데 실패했다는 겁니다. SK하이닉스에게 HBM 수율 경쟁에서 밀렸고, AI 칩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는 엔비디아의 퀄리티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HBM 호황이라는 흐름도 타지 못했는데요.

최근 HBM 관련 투자를 확대하며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려 하지만, 삼성전자는 과거 HBM 연구 개발을 진행하다가 2019 HBM 개발팀을 축소했습니다. 예상보다 수요가 적고 수익성 보장이 쉽지 않다는 이유였죠. 이렇게나 근시일내에 HBM 시장이 급성장할 줄 몰랐죠.

이후 AI 열풍으로 HBM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한 건 삼성전자로서 당황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HBM 생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장은 삼성전자의 능력을 의심하기까지 했죠. 현재 삼성전자의 HBM3E 8단 제품은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가 진행 중인데요. 로이터는 삼성전자가 이 테스트에서 탈락했다는 보도를 내놓은 바 있습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반박했지만, 지난달 잠정 실적 발표와 함께 "HBM3E의 경우 예상 대비 주요 고객사향 사업화가 지연됐다"라며 테스트 완료를 목표 내에 해내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는데요. 사실상 HBM3E의 엔비디아 공급은 불발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는 앞서 HBM3E 8단 제품을 3분기 중에 양산 및 공급하고, 12단 제품은 하반기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죠.

이처럼 삼성전자가 자사 HBM 사업이 녹록지 않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은 처음으로, 결국 HBM의 최대 생산능력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내년 말까지 최대 월 20만 장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에서 월 17만 장으로 줄였죠.

 

SK하이닉스는 안전할까?

🏃 독주의 비결은 기술력

반면, SK하이닉스는 지난 10년간 투자한 연구 개발의 결실로 HBM 시장 선두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밀려 만년 2으로 불렸지만, HBM을 내세운 차세대 반도체를 선점하며 HBM 시장의1위 자리에 올랐죠. 세계 최초 양산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SK하이닉스의 HBM3E 12단은 이미 고객사들에 샘플 공급을 마치고 4분기부터 공급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삼성전자와 달리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에서 HBM과 고용량 D램과 낸드 등 AI 반도체 비율은 20%가 넘습니다. 여기에 메모리 빅3 중 유일하게 MR-MUF 공정 방식을 선보이고 있기도 한데요. SK하이닉스의 HBM 생산 효율이 TC-NCF 공정 방식을 쓰고 있는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보다 8.8배 높습니다.

🔎 TC-NCF? MR-MUF?

  • MR-MUF: 반도체 칩을 회로에 붙이고 위로 쌓아 올릴 때 칩과 칩 사이 공간을 EMC라는 물질로 채워 넣는 공정입니다. EMC로 빈 공간을 채워 넣은 덕분에 방열이 우수하고, 웨이퍼 휘어짐 현상이나 불량률도 줄일 수 있습니다.
  • TC-NCF: 반도체 칩을 회로에 붙이고 위로 쌓아 올릴 때 칩 사이에 필름 소재를 사용하는 공정입니다. 빈틈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방열 문제가 발생하며 품질 수준도 MR-MUF에 비해 낮습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당분간 SK하이닉스를 쉽게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올해 SK하이닉스는 처음으로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을 뛰어넘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죠. 이미 3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영업이익 실적 전망(5~65,000억 원) SK하이닉스(6~7조 원)보다 낮습니다.

 

🐾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의 고군분투

삼성전자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16단 이상 HBM에 하이브리드 본딩 기술을 적용하는 전략을 선보입니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D램을 더 효율적으로 쌓아 HBM의 두께를 줄이고 속도를 빠르게 하는 기술인데요. TC-NCF 공정 방식을 개선하는 것으로, HBM4에서 이를 성공시켜 HBM 시장의 판 뒤집기를 노리는 모습입니다.

마이크론 역시 HBM 생산능력을 확대해 기세를 끌어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D램 생산과 패키징 공정이 집중된 대만 타이중 공장을 HBM 라인으로 확충했고, 낸드 생산 거점인 싱가포르 공정도 HBM 후공정 라인으로 확대하는 계획을 세웠는데요.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반도체 공장 건립 및 설비 투자를 위한 보조금을 약속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마이크론은 발 빠른 인재 영입에도 열을 올립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수백 명의 직원이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것으로 나타나 국내 반도체 기업이 경계심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SK하이닉스에서 HBM 핵심 개발자로 있던 직원을 임원급으로 채용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된 적도 있습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죠.


💡 3줄 요약

  • 메모리 반도체는 D램과 플래시 메모리로 나뉘며, 3~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을 가집니다.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는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인데요.
  • 고성능 메모리인 HBM이 성장 동력으로 떠올랐지만, 삼성전자는 HBM 시장에서 뒤처지며 위기설에 휩싸였습니다.
  •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의 3파전이 이어질 전망입니다.

전영현 삼성전자 DS 부문 부회장은 실적 발표 이후 낸 반성문에서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 완벽한 품질 경쟁력만이 삼성전자가 재도약하는 유일한 길"이라며 그 무엇보다 기술력을 중시했습니다. 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읽으면서 차세대 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중요한 시점임을 시사하는데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의 3강 구도 속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승자는 뒤바뀔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