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 세계가 월드컵 열기로 뜨거운데요. 각국 대표 선수들이 볼다툼을 벌이는 동시에, 이들을 후원하는 기업들도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특히 유명 스포츠 패션 브랜드들은 월드컵 유니폼 후원에 적극적인데요.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국가에 유니폼을 후원하는 기업은 바로 ‘나이키(Nike)’입니다. 본선에 진출한 32개국 중 13개국이 나이키의 유니폼을 입죠.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보여주는 월드컵처럼, 나이키도 ‘Just Do It(그냥 해)’이라는 슬로건 아래 도전정신을 내세웁니다. 이는 단순히 브랜드를 알리는 메시지에 그치지 않는데요. 브랜드에서 직접 과감한 변화를 시도하며 메시지를 실천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한 나이키가 선보인 도전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나이키의 50년
나이키는 일본의 운동화를 수입해 판매하는 회사에서 출발했습니다. 지금의 나이키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인 브랜딩과 마케팅 덕이죠.
- 나이키의 전신은 ‘블루 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입니다. 1964년 필 나이트와 빌 바우어만이 함께 설립했는데요. 이때는 독자적인 제품을 판매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일본의 ‘오니츠카 타이거(지금의 아식스)’의 운동화를 미국에 들여와 팔았죠.
- 하지만, 오니츠카 타이거와의 계약 만료가 다가오자, 독자적인 브랜드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1971년 사명을 ‘나이키’로 바꿨는데요. 승리의 여신 니케에서 따온 이름이죠. 나이키를 상징하는 ‘스우시’ 로고 역시 니케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 나이키는 1985년에 마이클 조던과 파트너십 계약을 맺으며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에어 조던’은 출시 첫해에만 1억 3,0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는데요. 결국 하나의 브랜드로 런칭돼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죠.
- 1988년에는 나이키의 정체성을 만든 슬로건 ‘Just Do It(해 버려)’이 처음으로 광고에 등장했습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전문 운동선수를 넘어 모두에게 도전정신을 불어넣는 브랜드로 거듭났는데요.
- 2000년대부터는 한정판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2002년 슈프림과 콜라보한 ‘나이키 SB 덩크 로우’ 모델을 500족만 판매했죠. 2015년에는 앱 ‘SNKRS’를 출시해 한정판 제품을 불시에 판매하는 드롭 방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했습니다. 나아가 추첨식으로 판매하는 드로우 방식은 소장욕을 더 자극했습니다. 운동화를 되팔아 재테크하는 ‘슈테크’ 열풍을 일으켰을 정도죠.
Just Do It: 놀이, 사람, 지구
나이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Just Do It’으로 대표되는 도전정신입니다. 올해 브랜드 런칭 50주년을 맞아 나이키가 거쳐 온 50년과 앞으로 맞이할 50년을 대표하는 키워드 세 가지를 제시했는데요. ‘play(놀이)’, ‘people(사람)’, ‘planet(지구)’입니다. 각각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나이키의 행보를 살펴보겠습니다.
Play
나이키는 스포츠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로 만들고자 하는데요. 더불어 스포츠에는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광고와 지역 사회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신념을 드러내죠.
- 스포츠 선수들을 전폭적으로 후원해왔습니다.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코비 브라이언트 등이 대표적인데요. 스폰서십으로 나이키도 막대한 이익을 얻지만, 선수들은 경제적 부담 없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스포츠의 가치를 수호하는 나이키의 노력입니다.
- 나이키의 핵심 메시지는 전문 체육인 외에도 누구나 운동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88년 ‘Just Do It’ 슬로건이 등장한 배경이죠. 평범해 보이는 노인이 다리 위를 조깅하는 광고는 모두에게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습니다.
- 작년에 공개된 ‘Play New’ 광고는 더 진화된 ‘Just Do It’ 정신을 보여줬는데요. 스포츠 스타에서 일반인까지 여러 인물이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실패하는 장면을 그려냈습니다. 그냥 해보라는 메시지에서, 실패해도 괜찮으니 해보라는 메시지가 더해진 거죠.
- 광고 외에도 다양한 지역 사회 프로그램을 제공해 놀이로서의 스포츠를 강조하는데요. 특히 아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경쟁심보다 순수한 즐거움을 얻어갈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의 ‘플레이 아카데미’, 한국에서의 ‘액티브 모두’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왔죠.
People
나이키는 그동안 인종·성별·가치관 등으로 배제되는 이가 없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이처럼 사회·문화적 이슈에 분명한 태도를 나타내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을 브랜드 액티비즘(activism, 행동주의)이라 하는데요. 나이키의 광고 캠페인은 대표적인 브랜드 액티비즘의 사례로 꼽히죠.
- 2018년 ‘Just Do It’ 30주년 캠페인에서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홍보대사로 발탁했습니다. 캐퍼닉은 경기 시작 전에 국가 제창 대신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로 인종차별에 항의한 선수인데요. 퍼포먼스로 인해 팀에서 방출된 선수를 과감히 전면에 내세웠죠. 물론 거센 반발을 직면하기도 했는데요. 그만큼 많은 지지를 받아 SNS에서 4,300만 달러의 광고 효과를 얻었고 광고 공개 이후 떨어졌던 주가도 다시 올라갔죠.
- 과잉 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사망에 이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는데요. 나이키는 ‘Just Do It’을 비틀어 ‘For Once, Don’t Do It(이번 한 번만은, 하지 마라)’이라는 문구로 인종차별에 반대했습니다.
- 일본에 존재하는 차별을 지적한 광고도 화제였는데요. 2020년 공개된 ‘You Can’t Stop Us’ 광고는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과 혼혈,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 학생들의 모습을 그려 일본 사회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했습니다.
Planet
지구가 없으면 스포츠도 존재할 수 없죠. 나이키는 일찍이 지속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였는데요. 매년 지속 가능 경영에 관련된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친환경을 브랜드의 중요한 가치로 내걸고 있죠.
- 1992년부터 ‘나이키 그라인드’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신발 제조 과정과 수명을 다한 신발에서 나오는 고무, 섬유, 가죽 등을 분리해서 새로운 소재로 가공하는 프로그램인데요. 나이키 그라인드 소재는 나이키 제품뿐 아니라 운동장과 러닝 트랙 등 다양한 곳에 활용됩니다.
- 2021년에는 ‘나이키 리사이클링&기부(Recycling & Donation, RAD)’ 프로그램을 도입했습니다. ‘나이키 그라인드’의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전에는 매장에서 낡은 운동화의 기부만 받았다면, RAD 프로그램은 의류까지 기부받습니다.
- 나이키는 2030년까지 ‘무브 투 제로’ 정책을 통해 탄소 배출량과 폐기물을 점차 줄여나갈 예정인데요. 정책의 일환으로 지난 9월 ‘나이키 포워드’를 발표했습니다.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존의 니트나 뜨개질 방식 대신 얇은 레이어 여러 개를 연결하는 니들 펀칭 기술을 이용했는데요. 그 결과 탄소 배출량이 75% 줄어들었습니다.
Nike Does It: 나이키의 변화
나이키는 브랜드의 신념은 고수하되,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2019년 아마존과 결별하며 D2C(Direct to Customer)로 대대적인 방향 전환을 꾀했는데요. 디지털을 통해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전략은 최근의 메타버스와 NFT 사업으로도 이어집니다.
- 2019년, 나이키는 아마존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겠다는 취지였죠. 온라인 매출의 절반 이상이 아마존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나이키의 결정을 우려하는 분위기였는데요. 바로 다음 해 코로나가 유행해 옳은 선택이었음이 증명됐죠. 전년 대비 2020년 9~11월 매출은 9%, 영업 이익은 30% 늘어났습니다.
- 메타버스, NFT 사업에도 진출했습니다. 지난 4월 최초의 NFT 운동화인 ‘RTFKT x 나이키 덩크 제네시스’를 출시했는데요. 작년 가상 스니커즈 기업 아티팩트(RTFKT)를 인수해 탄생한 결과물이죠. 출시한 지 보름 만에 만 개 이상 팔려나가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증강현실(AR) 후드인 ‘RTFKT x 나이키 AR 제네시스 후디’를 선보였는데요. 디지털 혁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입니다.
나이키는 일관적인 브랜딩을 통해 스포츠에 바탕을 둔 도전 정신을 강조해왔는데요. 브랜드 철학은 잃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춘 혁신도 보여줬죠. 반세기 동안 선망받는 브랜드로 자리를 지킨 비결입니다. 물론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닌데요. 2018년에 직장 내 성차별 및 성희롱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작년에는 소수민족을 착취해 생산된 중국 면화를 보이콧했다가 “우리는 중국을 위한 브랜드"라며 자세를 낮췄죠. 사회 이슈에 대해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만큼, 그 목소리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줘야 할 텐데요. 다가올 100주년까지 더 발전할 나이키의 ‘Just Do It’ 정신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