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한입] 세계 경제 대통령,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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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한입] 세계 경제 대통령,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미국 통화 정책을 운용하고 시중은행들을 감독하고 규제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합쳐져 있는 셈이죠. 기축 통화로서 높은 위상을 가진 달러의 가치를 결정하는 연준의 권한과 영향력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합니다. 연준 의장이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이번 연준 의장은 더더욱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법조인 출신으로 증권가에 뛰어들었다가 공무원으로 변신한 특이한 이력은 이전에도 관심을 끌었는데요. 단순히 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과감한 금리 인상으로 전 세계 금융계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영향력에 비해 개인에 대해선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오늘의 주인공, 제롬 파월입니다.


법조인에서 증권맨으로

  • 1953년 워싱턴DC에서 태어난 제롬 파월 의장은 프린스턴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조지타운 대학교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됐습니다. 미국 경제 수장이 경제학 학위가 전혀 없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긴 합니다. 1978년 윌리엄 밀러 의장 이후 40년 만이죠.
  • 5년 후 파월은 투자은행 업계로 진출하는데요. 1984년 딜런 리드 앤 컴퍼니에 입사해 기업 인수합병에 뛰어들었습니다. 능력도 출중했던 파월은 1990년 회사 부사장에 오르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죠.
  • 1990년 딜런 리드 앤 컴퍼니의 CEO가 아버지 부시 대통령 당시 재무장관으로 지명되면서 파월 역시 재무부 차관으로 깜짝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금융기관 관련 정책과 국채 시장을 담당했죠. 그러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재임에 실패하면서 그의 공직 생활 역시 짧게 마무리됐습니다.
  • 이후 파월은 월가에서 계속 투자 업계에 종사했는데,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 3대 사모펀드로 알려진 칼라일 그룹에서 재직하면서 기업 인수·합병을 진행했습니다. 월가에서 일하면서 큰 돈을 벌기도 했는데요. 2000만 달러에서 5500만 달러 정도의 자산을 가졌다고 알려졌죠.

오바마가 지명한 공화당원 연준 이사

  • 제롬 파월은 2012년 오바마 대통령에 의해 연준 이사로 지명되면서 본격적으로 통화 정책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2008년 오바마의 적수였던 매케인 후보에게 많은 기부금을 낼만큼 열성적인 공화당원이었던 파월이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을 받은 것은 다소 의아해 보이는데요. 여기엔 정치적 배경이 숨어 있습니다. 2010년 연준 이사로 지명된 피터 다이아몬드 MIT 교수가 공화당 의원들의 강한 반대로 상원 인준을 받지 못한 전례를 의식한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연준 이사로 공화당 인사, 민주당 인사 한 명씩을 각각 지명한 것이었죠.
  • 50대에 연준 이사가 된 제롬 파월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습니다. 월가 출신임에도 연준 이사로 일하면서는 시장친화적이지만은 않았고, 금융시장 규제에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었죠.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매파, 비둘기파도 아닌 올빼미파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트럼프 vs 제롬 파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 © Wikipedia Commons
  • 제롬 파월 의장의 전임자는 최초의 여성 연준 의장, 재닛 옐런이었습니다. 그는 2008년 리먼 사태 당시 시행했던 양적 완화로 풀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 2015년 금리 인상을 결정했는데요. 당시 사업가였던 트럼프는 이러한 결정에 매우 분노하면서 옐런을 해임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습니다. 결국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 의장으로 제롬 파월을 지명하면서 재닛 옐런은 39년 만에 연임에 실패한 연준 의장이 됐습니다.
  • 트럼프는 오랜 월가 경험을 가지고 있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제롬 파월을 지명하면서 시장친화적이고 자신에게 순종적인 연준 의장을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세간엔 월가를 이해하는 연준 의장이 될 거란 평가도 돌았습니다. 그런데 파월 역시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가면서 트럼프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죠. 이에 트럼프는 ‘시진핑과 파월 중 누가 더 큰 적이냐’는 트윗 올리는 등 자신이 임명한 연준 의장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2019년 7월 파월 의장은 결국 금리 인하에 나섭니다. 경기 둔화가 우려될 때 금리를 인하하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연준이 경제 여건이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금리를 0.25%P 인하한 것입니다. 파월은 예방적 차원, 보험적 성격의 조치라는 표현을 통해 대통령의 압박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금리 인하 당시엔 파월이 대통령과 월가의 협공에 굴복했다며 은밀한 환율 조작에 가담했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오르락내리락 날뛰는 미국 금리

  • 하지만, 2020년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 상황이 급반전됐습니다. 미국 내 실업률이 가파르게 치솟는 등 미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었죠. 이에 파월은 연 1.5~1.75%였던 기준 금리를 곧바로 제로 수준(연 0~0.25%)으로 전격 인하했습니다. 동시에 무제한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며 2년도 채 되지 않아 4조 5천억  달러(약 6천조  원) 넘게 시장에 풀었죠.
  • 2021년 11월, 바이든 대통령은 파월 의장의 연임을 선택했습니다. 2026년 3월까지 연준 의장으로 재임하게 됐죠. 당시 파월의 경쟁자는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였는데요. 민주당의 지지를 받는 인물이었지만, 뚜렷한 좌파적 성향이 걸림돌이 됐습니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 © Fed
  • 결국 연임에 성공한 파월 의장은 물가 안정을 위해 본격적인 테이퍼링에 나섭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시장에 푼 돈을 회수하겠다는 뜻이었죠. 올해 1월, “고용 시장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기준금리를 올릴 여유가 꽤 있다”라는 파월의 발언으로 미국 증시를 얼어붙게 하기도 했습니다.
  • 월가 출신인 동시에 연준 이사 활동 당시 중도적인 성향을 보여온 파월 의장에 대해 시장은 금리를 인상할 의지가 크지 않다는 의심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물가 상승률이 잡히지 않자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P 인상)을 네차례 연속 단행하는 등 과감한 움직임을 보였죠.
제롬 파월 연준 의장 © Fed

얼어붙은 세계 경제, 제롬 파월호의 운명은?

  • 연준이 빠르게 금리를 인상하면서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진데요. 기축 통화 기능을 하는 달러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더욱 거세졌죠. 그렇다고 미국을 따라 금리를 빠르게 인상하자니 가계와 기업에 부담을 전가하는 꼴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한국은행 총재는 제롬 파월” 이라는  농담도 나올 정도죠.
  • 파월 의장은 미국 내에서도 꽤 거센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금리 인상 시기 늦어 인플레이션을 자초했다는 지적이죠. 지나치게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시장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는 비판도 받는 상황입니다.

2020년 파월 의장은 코로나19 사태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아 발 빠른 대응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경제 회복기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치며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면치 못하고 있는데요. 미국 역사상 통화정책이 단기간 안에 이렇게 급변한 것은 전례가 없습니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파월 의장, 과연 후대에는 성공한 연준 의장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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